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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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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0일 "건축과 우리의 일상성" <오성헌 광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가 매일 접하지만 쉽게 지나쳐버리는, 그러나 아주 깊숙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있는 존재, 바로 ‘건축과 우리의 일상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혹시 오늘 하루, 여러분은 몇 개의 건축물과 공간을 지나오셨는지 생각해보셨나요? 눈을 떠 처음 마주한 침실, 욕실의 타일 바닥, 부엌의 식탁, 현관문을 나서며 밟은 계단, 커피 향이 스며 있는 카페.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장면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건축’이라는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셈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건축을 ‘특별한 무언가’로 오해합니다. 유명한 건축가의 이름이 붙은 박물관, 대형 랜드마크, 눈길을 끄는 외관의 고층빌딩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건축의 진짜 본질은 오히려 우리 일상 속에 숨어 있습니다. 건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고, 개인적이며, 친숙한 존재입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느끼는 정겨움, 햇빛이 잘 드는 창가의 따뜻함, 벤치 하나 놓인 조용한 마당에서의 평화로움! 이러한 순간들이 모두 건축이 주는 ‘일상적 경험’입니다. 

 

 요즘 건축계에서는 ‘일상성’이라는 개념이 점점 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건축이 화려한 디자인이나 상징성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평범한 삶에 편안하게 스며들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는 뜻이죠. 건축은 이제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공간에서 살고 있나요?" "당신의 삶은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나요?" 이 질문에 우리는 다시 답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공간에서 가장 나답게 살 수 있을까?" 사실 좋은 건축이란, 눈에 띄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공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곳에 있는 동안에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떠난 뒤에야 ‘참 좋았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그런 공간입니다.

 

 이런 철학을 반영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새로운 문화시설을 짓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이던 전남도청 건물을 보존하고, 그 위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광장과 전시 공간을 얹었습니다. 역사와 기억, 공동체와 예술 및 일상성이 만나는 열린 무대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바로 ‘우리’가 있습니다. 건축은 더 이상 건축가만의 것이 아닙니다. 공간은 그 안에 머무는 사람, 그 공간을 쓰는 사람,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의해 완성됩니다. 우리는 매일 공간을 사용하면서도, 그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의도와 감성이 깃들어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입문 손잡이의 높이는 적절한가요? 계단의 폭은 어르신들이 오르내리기 편한가요? 창문은 햇빛을 잘 받아들이고 있나요? 이런 사소한 요소들이 모여 우리의 하루를 구성하고,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며, 결국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있는 그 공간도 누군가의 고민과 선택, 재료와 시간, 설계와 의도가 겹겹이 쌓여 완성된 ‘건축’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단지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용자’이자 ‘참여자’입니다. 여러분의 하루가 머무는 공간이, 더 편안하고 따뜻하며, 여러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익숙한 골목을 지날 때는, 그 벽돌 하나, 그 계단 하나에도 담긴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 보는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