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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2일 “아버지의 침묵” <정희남 대담미술관장>
전쟁 이후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과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 하나로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을 꼽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해석한다면, 교육은 꼭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농업현장이나 공장, 가정, 연구소, 학원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남녀노소 누구든지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통해 인격을 키워나가는 것이 교육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유난히 교육열이 높으셨던 부모님 밑에서 3남 6녀 중 여섯 번째, 다섯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깡촌이었지만, 집에서 5분 정도 거리에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여학생은 고향에서는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분위기여서, 언니들은 거의 남학생들 틈에서 혼자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땐 농사가 최고였던 시대라, 농번기가 되면 남학생들도 거의 결석할 만큼 교육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버지는 형제들이 4, 5, 6학년이 되면 차례로 전학을 시키셨습니다. 부모님 없이 형제들끼리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니게 하셨고, 우리는 윗형제에게 절대 복종하라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큰 싸움 없이 모두가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바로 밑 동생은 남동생이었습니다. 저는 월말고사 때마다 동생의 성적표와 시험지를 검사하며 성적이 떨어지면 손바닥을 때렸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체격도 나보다 훨씬 크고 힘도 세졌지만, 매번 순순히 손을 내밀며 매를 맞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이 되기 전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 날, 성적이 떨어진 동생을 때리자마자 동생은 저를 밀쳐 넘어뜨리고, 손지검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해서 무작정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깜깜한 밤, 3~4시간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시골길을 울면서 걸어갔습니다. 귀신 나온다는 대밭, 누군가 빠져 죽었던 강변, 이웃이 목을 맸던 고목나무, 시골 상여집, 자갈이 흘러내리는 비탈길, 달빛조차 무서워 온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분한 마음이 더 커서 결국 오밤중에 고향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주무시던 부모님은 화들짝 놀라셨고, 저를 헤아려주시며 “감히 누나에게 그럴 수 있냐”고 대노하시며 내 마음을 다독여주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아버지는 “밤도 늦었고 버스도 없으니 내일 같이 광주로 가자”며 저를 달래며 재워주셨습니다. 부모님의 분노에서 오히려 사랑을 느끼며, 그 모든 무서움을 견뎌내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음 날 광주집에 도착하자, 동생은 눈치를 채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저 침묵만이 흘렀고, 아버지는 동생만 바라보셨습니다. 훗날 동생은 말했습니다. 차라리 매를 맞거나 자초지종을 묻거나 훈육이라도 해주셨으면 덜 답답했을 거라고. 3~4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있다가 발이 저려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결국 엎드려 울며 “대단히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 절대 누나에게 대들지 않겠습니다”고 빌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동생의 반성을 들으신 후에야 “나는 이제 시골로 가야겠다.”단 한마디 말씀만 남기시고 그대로 조용히 나가셨다고 했습니다. 어제 저녁 그렇게 역정을 내시며 위아래도 없고 후레자식이라며 큰 소리를 치셨던 것처럼 자초지종을 물으실 법도 하였지요. 그러나 그 오랜 시간의 한마디 말씀도 안하시고 동생을 수없이 많은 생각과 반성, 미안함 등으로 스스로 깨달게 하였습니다. 동생은 그 침묵의 의미를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고 되뇌이곤 합니다. 저 역시 40여 년을 교육자로 살아왔지만, 아버지와 같은 내공과 깊이를 따를 수 없어 늘 부끄럽기만 합니다.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가르치거나 강요하기 전에, 교육받는 사람이 어떤 성향인지, 어떤 성격과 꿈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그리워하고 관심을 가지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일방적인 강의나 하달이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시작되는 교류와 이해, 그것이 교육의 출발점임을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이것이 바로 교육자에게 참 중요한 덕목일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교육의 현장에서 우리가 어떤 침묵을 택할 것인지, 어떨 때 소리를 높여야 할지 고민해볼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