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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4일 “팬덤화되어가는 정치와 행정의 문제” <박기영 순천대 명예교수>
오늘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팬덤 정치와 행정의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특정 세력이나 강경한 입장이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선호하는 성향의 콘텐츠를 계속 추천하기 때문에, 다른 관점이나 균형 잡힌 정보를 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양극화가 맞물리면서 불만과 분열이 심화되고, 여론은 특정한 방향으로 쏠리게 됩니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사회적 대화의 공간은 줄어들고, 결국 사회 전체가 양극단으로 나뉘는 현상이 강화됩니다. 그 결과 과도한 지지와 배타적 태도가 커지고, 정치적 팬덤은 더욱 공고해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야가 어렵게 합의했던 특검법과 정부조직개편법의 국회 동시 처리가 강경한 주장과 이견을 조율하지 못해 합의가 무산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타협과 합의보다는 강한 목소리에 의해 의사결정이 흔들리면서, 정책적 합의가 끝내 파기된 것입니다.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둘러싼 찬반 논의, 그리고 당내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유튜브와 연계된 특정 인물의 연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이처럼 정치 과정에서 새로운 미디어와 팬덤적 여론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성향의 활동가 찰리 커크가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팬덤이 단순한 지지와 반대의 수준을 넘어서 사망에 이르는 폭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나아가 민주주의의 제도적 안전망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입니다.
최근 국회가 방송통신미디어위원회 출범을 결정한 것은 매우 시의 적절하다고 판단됩니다.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콘텐츠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등 미디어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신흥 미디어의 발전과 그로 인한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이 위원회가 방송통신 산업을 발전시키고 감독하며, 정보의 공정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레거시미디어에 비해 정보통신 미디어의 영향력이 빠른 속도로 커진 만큼, 이를 관리하고 균형 있게 다루는 시스템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행정 영역에서도 팬덤의 우려는 존재합니다. 행정은 본래 과학적 근거와 전문적 지식, 그리고 합리적 절차에 따라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정 정치 세력이나 지지층의 압력 속에서 결정이 왜곡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검찰개혁 논의 과정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는 큰 틀에는 합의했지만, 검찰에게 보완수사권을 부여할지 여부는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정 개혁과 새로운 제도를 설계할 때 정치적 대립과 강경한 목소리에 가려져,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논의가 부족할 경우 개혁이 실패할 수도 있고, 사회적 합의는 늦어지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개혁의 성과도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팬덤 정치와 행정은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운영 방식에 깊은 영향을 주는 문제입니다. 정치와 행정 모두 팬덤적 압력에서 벗어나 합리적 근거와 민주적 절차 위에서 운영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습니다. 행정 개혁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사회적 합의 속에서 추진될 때, 우리는 신뢰받는 민주주의를 더욱 굳건하게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