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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7일 "지역을 담은 건축, 광주와 네덜란드" <오성헌 광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거리, 그 위에 서 있는 건축물들, 그저 공간을 채우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하지만 건축은 단순히 ‘집을 짓는 일’만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한 지역의 역사, 문화, 그리고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은 공간을 말하는 언어이자, 기억을 보존하는 그릇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광주와 네덜란드, 두 지역의 건축을 통해 ‘지역성’이라는 키워드로 건축이 가진 힘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도시입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시민 의식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도시의 정체성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입니다. 이곳은 과거 전남도청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채, 그 주변에 현대적인 문화예술 공간을 새롭게 더한 복합문화시설입니다. 지하에는 대형 전시실과 공연장이, 지상에는 시민 누구나 오갈 수 있는 열린 광장이 조성돼 있죠. 과거를 지우지 않고, 현재와 나란히 놓으며, 시민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역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그렇게 광주의 기억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건축이 때로는 기념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는 것, 이곳을 보면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유럽의 강소국 네덜란드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네덜란드는 바다보다 땅이 낮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간척 기술과 해양 토목, 그리고 건축기술이 매우 발달했죠. 그 위에 사회적 평등이라는 철학을 더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회주택 정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암스테르담의 IJburg입니다. 이곳은 바다를 메워 만든 인공섬 위에 조성된 친환경 주거단지인데요, 수변 경관을 살리고, 재생 에너지를 활용하면서도,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커뮤니티 공간까지 세심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나 살고 싶은 주거 환경. 공공성과 삶의 질을 모두 잡은 건축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례는 덴하그의 Ypenburg입니다. 한때 군용 공항이었던 부지를 활용해 주민 친화적이고 환경적인 사회주택 단지로 재탄생시킨 곳입니다. 이곳은 임대료는 낮추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유 공간을 통해 공동체 문화를 살리는 건축적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이처럼 네덜란드의 사회주택은 “주거는 상품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이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건축과 도시계획을 실현해 왔습니다.
광주와 네덜란드 두 곳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아주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지역의 정체성과 사회적 가치를 건축에 담아냈다는 점입니다. 광주는 아픈 역사 속 민주주의의 기억을 문화예술과 시민 공간으로 승화했고, 네덜란드는 기술과 철학을 결합해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주택 모델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두 사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건축은 그 지역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그리고 “건축은 그 지역의 미래를 어떻게 제안할 수 있을까?” 건축은 눈에 보이는 형태만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 기억, 미래의 가능성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광주와 네덜란드의 사례처럼, 지역의 가치와 사회적 요구를 담은 건축은 그 도시의 풍경을 넘어 삶의 방식까지 바꾸기도 합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마주치는 공간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를 한 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