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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5일 "나와 또 다른 모든 ‘나’들을 존중하고 사랑합시다." <허승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의 출생에 관여했을까요? 위로 30대만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나의 출생에 직접 관여한 조상은 무려 21억 4,748만 3,646명이고, 더 거슬러 60대를 올라가면, 115경 2,921조 5,046억 684만 6,976명이라는 천문학적 숫자가 나옵니다. 이 중 단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 각자는 모두 인류 역사 이래로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교환하거나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으며,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존재 가치를 갖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짐멜이라는 철학자는 ‘인간 존재의 근거는 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인형은 모두 서로 같기 때문에 서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파손되면 버리고 동일한 인형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교환하거나 대체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절대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천문학적 숫자의 조상이 있어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타인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마치 혼자서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나만 있고 타인은 있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타인만이, 그것도 이익이 되는 동안만 존재합니다.
원인은 모든 것을 돈으로 그 가치를 환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무엇이든 일단 돈으로 교환되면, 그 본질적 가치를 상실하고 교환 가치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랑도, 이성도, 정의도, 인간마저도 돈으로 교환되어 그 본질적 가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교환 가치로 인해 상실된 소중한 것들의 존재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사랑의 과정에 돈이 개입되더라도 그것을 교환 가치로 환산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존재 가치는 그대로 남게 됩니다. 이성과 정의를 돈으로 교환하지 않으면, 그 존재 가치는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능력을 돈으로 값을 매기더라도 그것을 교환 가치로 절대화하지 않으면, 인간의 존재 가치는 존중받게 됩니다. 교환 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존재 가치를 회복하여, 나와 또 다른 모든 ‘나’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