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 보기
2026년 2월 20일 “주민자치의 심장, 도서관이 도시를 바꿉니다” <설정환 재설정도시연구소 대표>
이제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건물로 머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책을 읽기만 하는 도시에서, 책을 쓰고 만들어 내는 도시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봅니다. 도서관은 주민의 삶과 일상 속에서 민주적 자치와 문화적 에너지가 모이는 심장이자, 지역의 지식과 경험이 기록과 출판으로 이어지는 생산 거점이 되어야 합니다.
지역 현장에서 활동하며, 또 국회와 정당에서 정책을 다루는 경험을 통해 저는 광주가 가져야 할 자치와 문화의 새로운 모델을 오래 고민해 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도서관을 도시 자치와 지식 생산의 중심축으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구상을 주민과 함께 제도적 전환으로 풀어낼 때라고 봅니다.
광주에는 여러 구립도서관과 무등도서관, 광주문학관, 그리고 수많은 작은도서관이 생활권 곳곳에 분포해 있습니다. 접근성만 놓고 보면 이미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서관들이 주민의 삶과 지역 문제, 창작과 기록, 정책 제안과 연구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지는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여전히 많은 도서관이 ‘읽는 공간’에 머물러 있고, 주민의 경험이 사회적 기록과 출판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책을 소비하는 도시’에서 ‘책을 생산하는 도시’로 도약해야 합니다. 주민들이 강연을 듣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삶과 동네 이야기를 기록하고 연구하며, 그것이 출판과 전시, 정책 제안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마을 역사 기록, 생활사 아카이브, 청소년 지역연구 같은 활동이 도서관을 거점으로 이루어진다면, 도서관은 지역 지식 공장이 될 수 있습니다. 주민자치의 힘 역시 이 지점에서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운영 구조의 전환도 필요합니다. 현재처럼 시설 관리 중심의 위탁 체계로는 지역 연구와 출판, 창작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기 어렵습니다. 도서관 운영재단과 같은 새로운 중간지원조직 모델을 통해 사서 인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대학과 연구기관, 주민 연구모임을 연결하는 정책 플랫폼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민자치 구조 역시 함께 변화해야 합니다. 도서관에서 나온 연구와 기록이 주민자치 의제로 이어지고, 다시 구정 정책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자치는 비로소 생활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생활권 플랫폼은 교육과 문화, 연구와 지역경제를 함께 묶어내는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 주민자치의 심장으로 다시 뛰기 시작할 때, 광주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도시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이 바로 도서관을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