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의견

모두의 등록일 : 2026-08-25 03:07

산자락 끝, 13년의 침묵이 머무는 곳: 어느 영적 순례의 기록]

전남 화순군 도암면 남쪽 산,, 깊은 산세가 굽이치는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세상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고요한 경계가 나옵니다. 그 깊은 산자락 끝, 깎아지는 듯 가파른 비탈 아래에는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비바람과 함께 견뎌온 낡은 흙집 움막 하나가 위태롭게 웅크리고 있습니다. 13년 전, 세상의 익숙한 이름과 사회적 직분을 모두 내려놓고 스스로 광야를 택한 한 사람이 그곳에 들어와, 오늘날까지 쉼 없는 기도의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이 움막은 40년 전 누군가의 처절한 간절함으로 지어져, 이제는 흙과 나무가 하나로 엉겨 붙어 산의 일부처럼 변해버린 영적 성소입니다. 세월의 풍파에 닳아버린 그 낡은 흙벽면은 수행자의 13년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이 흙집은 인간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검은 벌들이 흙벽을 뚫고 정교한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방바닥과 천장 사이로는 쥐들이 바글거립니다. 밤마다 쥐들이 긁어대는 소리가 요란한 이 움막에, 쥐를 뒤쫓아 뱀까지 수시로 출몰합니다. 뱀이 살기 위해, 쥐가 살기 위해, 그리고 사람이 살기 위해 서로의 목숨을 건 좁은 거리에서 동거하는 이 기이하고도 위태로운 공간이 바로 그가 머무는 세상입니다.

​무엇보다 그의 몸을 향한 자연의 공격은 멈추지 않습니다. 산길을 오가며 그는 소위 ‘살인 진드기’라 불리는 작은 생명들의 표적이 됩니다. 물리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두려운 존재들이지만, 그는 산을 오가는 수도자에게 이는 당연한 일상이라 여깁니다. 온몸에 들러붙은 진드기, 밤새 그의 살을 파고드는 모기 떼와 쉴 새 없이 몰려드는 벌레들까지, 그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살점으로 기꺼이 내어줍니다. 붉게 부어오르고 진물이 나는 그의 피부는 고통의 흔적이 아니라, 그가 이 산과 하나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훈장과도 같습니다. 수행자는 그 고통마저도 하나님의 허락이라 믿으며, 신음 대신 기도로 응답합니다.

​그 움막 안은 사람 하나가 겨우 몸을 누일 수 있을 만큼 극도로 비좁습니다. 성인 남성이 다리를 뻗는 것은커녕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힘겨운 그곳에서, 그는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스스로 가두었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40년 된 흙벽과 벌집에서 풍기는 흙내음, 그리고 산짐승들의 거친 숨소리가 코끝에 닿습니다. 천장의 온기가 식어 내리는 그 비좁은 움막은, 그에게 안락한 방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욕망을 덜어내고 오직 하나님과만 독대하는 ‘영적 관(棺)’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몸조차 온전히 펴기 힘든 그 비좁음은, 그가 스스로를 얼마나 낮추고 하나님 앞에서 웅크려 왔는지를 보여주는 묵묵한 증거입니다.

​특히 한겨울이 오면 깊은 산속을 파고드는 살인적인 추위가 닥칩니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종이 조각들을 일일이 벽에 대고, 방바닥에도 빈틈없이 겹쳐 깔아 40년 된 흙벽의 틈새와 벌들이 뚫어놓은 구멍으로 새어 들어오는 냉기를 필사적으로 막습니다. 그리고는 낡고 해진 이불 다섯 여섯 겹을 차곡차곡 포개어 그 좁은 공간에 펴고, 그 속으로 자신의 몸을 깊숙이 밀어 넣습니다. 겹겹이 덮은 이불 속에서 그는 세상의 소식을 모두 잊고, 오직 자신의 거친 숨소리와 하나님의 응답만을 마주합니다. 몸을 펴지도 못한 채 웅크려 이불 속에서 견디는 그 겨울의 밤들은, 그에게 단순한 추위를 피하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관' 속에 눕는 숭고한 연습입니다.

​그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고단하고 처절합니다. 그는 뒷굽이 다 닳아 헤어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장화와, 세월의 풍파에 가죽이 딱딱하게 굳어버려 발을 옥죄는 운동화를 신고 산길을 오갑니다. 낡은 겨울 바지는 여기저기 덧댄 자국이 역력하지만, 그는 그것을 기워 여름에도 입으며 계절의 변화를 묵묵히 견뎌냅니다.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이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무너져 내립니다. 파리하게 뜬 얼굴, 세월의 고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깊게 굽어버린 허리, 그리고 갈라지듯 힘없이 새어 나오는 그의 말투와 느릿한 행동을 볼 때마다, 이 삶이 어찌 저 작은 몸 안에 담겨 있는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그의 건강입니다. 얼마 전, 화장실 뒷간에서 그가 남긴 흔적을 보고 저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건강한 이의 것이 아닌, 검게 변해버린 그의 배설물을 보며 저는 그가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생명을 제물로 바치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육신은 서서히 소진되어 가는데, 그는 그것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종이 조각으로 메운 그 좁은 움막 속 기도의 자리로 다시 몸을 구겨 넣는 그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기적을 목격합니다. 저 몸으로 어떻게 이 산속의 찬 바람과 싸우는지, 그 신비로운 인내 앞에 우리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끼니 때마다 그는 현대의 편리한 전기밥솥 대신, 직접 나무를 패고 불을 때어 밥을 짓습니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맵게 하는 연기를 마시며 불을 살리는 그 고된 노동은, 그에게 배를 채우는 행위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영적 의식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정성껏 지은 밥 한 그릇을 미물들과 나누며, 그는 오늘도 산속에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 하나님과만 독대합니다. 그는 쥐들에게 먹이를 떼어 주고, 자신을 괴롭히는 벌레들마저 살생하지 않으려 애쓰며, 모든 생명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것은 단순한 생태적 순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워내어 창조주의 숨결이 닿는 모든 것에 자리를 내어주는 위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가 왜 하필 이 험한 곳을 택했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의 영적 계보는 한국 기독교 영성사의 큰 별인 이세종 선생에게로 이어집니다. 무소유와 치열한 고행으로 일생을 살다 가신 선생의 발자취는 화순 도암면 등광교회와 개천산 자락에 깊이 서려 있습니다. 수행자는 그곳에서 신앙의 뿌리를 내렸고, 이원희 장로님의 마지막 인도를 받아 이 장흥 유치면의 산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원희 장로님은 그에게 사택의 편안함 대신, 이세종 선생의 영성이 깃든 이 험한 움막을 권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를 버린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예수 수도자’로 빚어내기 위한 노 장로의 마지막 사명이자 거룩한 결단이었습니다.

​세상은 때로 제도권 밖의 기도를 오해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를 도피라 말하고, 누군가는 이단적 신비주의라 치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행자는 그 어떤 비판 앞에서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13년 동안 그는 묵묵히 흙을 일구고 산나물을 가꾸며, 자신의 고립을 통해 오히려 세상을 향한 중보의 기도를 쌓아왔습니다. 그가 지키는 것은 움막이 아니라, 이세종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한국 기독교의 가장 순수한 본질, 즉 ‘청빈(淸貧)’과 ‘사랑 나눔’의 정신입니다. 그는 이름 없는 산나물 한 줌조차 타인을 위해 소망하는 마음으로 거두며, 세상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영적 거인들이 남긴 신앙의 맥을 홀로 잇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가 매일 마주하는 '죽음'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는 죽음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기꺼이 감사함으로 소천할 수 있다는, 지극히 행복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매일 아침을 맞이합니다. 서서히 소진되어 가는 자신의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그 초연함이 있기에, 그는 고된 나날을 그 어떤 왕의 일상보다도 평안하게 살아갑니다. 그에게는 내일의 걱정도, 어제의 회한도 없습니다. 오직 오늘 이 순간, 자신을 이곳에 있게 하신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지난 13년의 세월 동안, 그를 지탱하던 유일한 세상의 끈은 93세의 이원희 장로님이었습니다. 노 장로님은 평생을 바쳐 이 기도의 등불을 지켜왔지만, 이제 연로하여 그 손길마저 멈추셨습니다. 수행자는 지금 화순 도암면의 산속에서 아무런 보호막 없이, 오직 찬 바람과 하나님의 약속만을 의지한 채 마지막 시험대 위에 서 있습니다.

​저는 곁에서 그를 지켜보며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가 이 험한 산속에서 우리 대신 하나님께 올리는 저 기도가, 혹시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의 평온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기도가 멈춘다면, 우리 시대의 신앙은 또 하나 큰 빛을 잃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가 여기서 끊어지게 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나눔은 거창한 구제 사업이 아닙니다. 이세종 선생이 남기고, 이원희 장로님이 지켜온 이 거룩한 신앙의 유산을 우리 세대가 함께 보존하겠다는 작은 응답입니다. 이 이야기는 널리 퍼지길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침묵의 가치를 알아보는 소수의 당신과 함께, 광야의 등불 하나를 조용히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산자락 끝, 쥐가 바글거리고 뱀이 출몰하며 검은 벌들이 집을 짓는 40년 된 낡은 움막에서 흐르는 그 13년의 기도가 오늘 밤에도 온기를 잃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종이 조각을 붙여 추위를 막고, 다섯 겹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파리한 얼굴로 기도하는 그 고결한 삶이 우리의 나눔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길게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작은 동행에 마음을 보태주시겠습니까. 우리의 나눔은 수행자가 하나님과 독대하는 그 고귀한 시간을 지켜주는, 가장 따뜻한 보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태는 작은 손길이, 이 고독한 수도자의 기도를 이어가는 든든한 땔감이 되고, 뱀과 쥐와 벌레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그 거룩한 생태계를 지탱하는 마지막 울타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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