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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더] 집중취재사회뉴스데스크

"아파도 참고 일해야".. 갈길 먼 산재보상 제도

(앵커)

한 번 산업 재해를 겪고 나면
극심한 트라우마 때문에
일상 생활이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직접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고통은 이어지기 마련인데요.

치료비 지원도 없이
홀로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희원 기자가 허술한 산재 보상 제도를 점검해봤습니다.


(기자)

여수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승남 씨는 매년 1월이 되면
간헐적인 흉통에 시달립니다.

지난 2013년 2월 7일,
함께 일하던 동료 A 씨가
압착기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난 이후부터
시작된 증상입니다.

* 김승남 / PTSD 피해 노동자
"1월 말이 되잖아요. 가슴이 조여오고 아파요.
2월이 되면 막 답답해서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그래요.
(그러면) 아, 왔구나. 돌아가신 그날이 왔구나. 기일이 왔구나."

청소차 내부를 정리하는
마무리 작업을 하던 도중 일어난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벌써 8년이나 지났지만
영안실에 누워 있던
A 씨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 김승남  / PTSD 피해 노동자
"눈을 감지 않고 있어서 눈을 감기려고 하는데 안 감기더라고요.
결국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눈을 마사지해서 감겨주시는데
그 장면이 아직까지도 생생해요."

전형적인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지만,
회사에 치료비를 청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산재 인정을 받는 과정이
험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된
전국 산재 신청 건수는 모두 12만 4천여 건으로,
이 중 11만 3천여 건이 산재 인정을 받아
90% 이상의 승인율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유형별로는 크게 달랐습니다.

업무상 사고인 경우에는
승인율이 높았지만, 질병의 경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뇌, 심혈관 질환의 경우
37%밖에 승인을 받지 못했고,
암이나 근골격계 질환은 60%대,
정신 질환의 경우에도 70%대에 머물렀습니다.

* 전경진 / 전남노동권익센터 노무사
"(사고는) 거의 대부분 승인이 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업무상 질병 같은 경우에는 업무와 해당 상병 간의 인과관계를
의학적, 과학적인 판단에 의해서 승인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승인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납니다.)"

특히 업무상 질병 유형 중에서도
PTSD로 산재 신청을 해 인정을 받은 경우는,
전체 산재 승인 건수의 0.03%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청을 해도 인정을 받지 못하니,
공상처리를 하자는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현실적이라는 인식이 높습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된 겁니다.

* 전경진 / 전남노동권익센터 노무사
"책임을 부담하는 것에 대해서 (사업주는) 부담을 굉장히 크게 갖기 때문에
웬만한 경우에는 '치료비 얼마 줄게. 이걸로 마무리하자'라고 공상제안을 많이 해요.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 정도 수준으로 받고 포기하자.."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산업재해에 내몰린 노동자들.

법의 보호막이 너무 얕은 탓에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가는 길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MBC NEWS 조희원입니다.

조희원
여수MBC 취재기자
고흥군ㆍ여수경찰
"꼼꼼히 취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