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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살림꾼, 이 사람을 아시나요?

(앵커)

일제 치하에서 생명을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을 이끌어 온
많은 숨은 일꾼들이 있습니다 .

그 가운데 일본에서 조선인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사재를 털어 상해 임시정부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온
경남 양산 출신의 '우산 윤현진' 선생도 계시는데요.

선생을 추모하는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부산문화방송 정세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바로 그 해 !

상해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

앞 줄 한 가운데 도산 안창호선생의 뒤편에서
오른 팔을 허리에 두고 있는 이가
바로 양산 출신 독립운동가, 우산 윤현진 선생입니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해공 신익희 선생,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한 모습들도 드러납니다.

1892년 양산 상북면 소토리에서
7천석을 가진 대부호,
윤필은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윤현진 선생은 구포초등학교와 배재학당등을 거쳐
일본 도쿄의 메이지 대학 법학과에 진학하고

아후 귀국해서는
경남은행 마산지점장으로 근무하다
1919년 3월 상해로 망명합니다 .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장 공포에 참여하고 임시의정원으로 선출된 뒤,
초대 재무차장으로 임명되면서
독립자금을 마련하는등
임시정부의 초기 멤버로 활동합니다.

* 신용철 관장 / 양산시립박물관장
" 자신의 모든 사재를 털어서 임시정부에 넣고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재무차장에 취임돼서
초창기 임시정부의 어려운 시기에
임시정부의 살림을 완전히 도맡아서 해서
임시정부를 반석위에 올려 놓았다는 점,
이것을 가장 높은 공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임시정부의 빠듯한 살림살이와
힘겨운 독립운동으로
온갖 시련을 겪던 선생은
갑작스런 건강악화로
1921년 9월 17일 상해에서,
광복의 기쁨을 미처 꿈꿔보지도 못한 채
29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서거 100주년을 맞아
양산시립박물관에 마련된 특별전에는
선생의 출생부터 유학시절의 독립운동,
귀국후 국내에서의 삶 ,
상해임시정부 등에서의 활동 등이
국내외에서 발굴된 빼곡한 자료들과 함께 자세히 소개됩니다.

특히 선생이 이름이 기록된
메이지대학 조선학생회 동창회 명부와
자신의 땅을 담보로 독립운동 자금을 대출했던 부동산 목록까지
국내 최초로 소개되면서,
오직 조국 대한의 독립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던
그의 헌신적인 삶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 이지은 학예연구사 / 양산시립박물관
"돌아가신 2년 뒤에 조선시보라는 신문에서
윤현진 선생의 토지 경매 목록이 확인이 되었는데
지금으로 환산을 하면 대략 12억, 최소 12억 정도가 되고
축구장 6배 정도의 규모가 된다고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밖에 경주 최부자 , 최준 과의 주고 받은 연하장과 조선말 서화계의 거장,
 석재 서병오 선생에게서 받은 그림등은 그와 교류했던 많은 인사들과의 인연을 통해
고귀했던 그의 성품을 짐작 할 수 있게 합니다.

특별전을 기획한 양산시립박물관측은
윤현진 선생 서거 100주년을 맞아
유적 답사와 학술대회도 개최하고
낮게 평가된 그의 서훈등급 향상을 위한
서명운동도 함꼐 실시할 예정입니다.

세상을 떠난 지 100년 !

독립운동가 우산 윤현진 선생은
생전에 남긴 숱한 흔적들과 함께
그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후손들의 가슴과 머리에 다시 한번 깊이 새겨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정세민입니다. 
이재원
광주MBC 뉴스팀장
뉴스 취재 총괄
"기억하겠습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