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4년간의 활동에도
'발포명령'과 '암매장'을 규명하는 데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보고서 초안을 보니
단순히 진상규명에 실패한 것에
그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전두환 회고록 재판을 통해
확립된 사실조차 보고서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먼저 천홍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980년 5월.
장갑차에 올라탄 시민들이 총을 들고 있습니다.
계엄군에 맞서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해 스스로 무장한 겁니다.
광주시민들이 언제 무장을 했는지는
5.18의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시민군은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일어나자 이에 분노해
각 경찰서를 습격했지만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이전부터 시민들이
각 경찰서를 습격해 무장하고 있어
계엄군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광주지법은 지난 2018년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재판에서
집단 발포가 이뤄졌던 오후 1시 이전에
시민들이 총기로 무장했다는 주장은
허위 사실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사실은 5.18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5.18진상조사위원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보고서 초안입니다.
시민군이 언제 경찰서에서 무기를 가져갔는지
확확정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5월 21일 오후에
총기를 탈취했다는 시민들 주장도 있고
도청앞 집단발포 전인 21일 오전에
총기를 탈취했다는 계엄군 주장도 있다는 식입니다.
* 김정호 변호사
"진상이 규명되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다시 원점으로 돌려서
후퇴시키는 오히려 왜곡의 근거를 만들어 주는
조사 보고서 결론이 나왔다는 것은..
근본적인 왜곡의 뿌리에 다시 다가간 지점이기 때문에.."
이 뿐만이 아닙니다.
전남도청 집단발포의 도화선이라고
전두환이 주장하는 집단발포 직전 계엄군의
사망 사실 또한 법원 판결보다 후퇴했습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5.18 당시 시민군의 무기고 피습 시점과
계엄군이었던 권 일병 사망사건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확인할 수 없다는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습니다.
계엄군 권일병이 깔려 숨진 장갑차가
시민군이 동원한 것이 아니라
계엄군 장비라는 사실이 법원 판결에서
확인됐음에도 '진상규명 불능'결정을 내린 겁니다.
보고서 초안을 열람중인 광주지역사회와
5.18 관계자들은 한탄하고 있습니다.
*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5.18에 대한 전면적 부인까지 하는
그런 지금 기사가 나오고 있거든요.
꼬투리 하나라도 잡고 그걸 침소봉대하거나
이런 방식으로 계속 퍼 나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단순히 어려운 주제를
밝혀내지 못한 게 아니라 이미 확립된 사실마저도
보고서에 싣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
후폭풍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입니다.
MBC뉴스 천홍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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