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희망곡

정오의 희망곡

12시 00분

사연과 신청곡

5.18 제자를 따라가신 친구 아버지...

예전 광주 민주항쟁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 라는 영화를 볼 때 친구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 있었답니다.
바로 80년 그때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친구의 아버지모습처럼 영화에서도 몇몇 제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선생님이 괴로워하는 장면 이었죠.
민주항쟁을 위해 교문을 나서려는 학생들을 막는 선생님...
친구들의 희생을 보고 민주주의를 외치려는 학생들...
점점 늘어나는 제자들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힘들어 하시는 선생님...
그렇게 제자들의 희생을 바라만 볼 수 없어 제자들과 함께 민주항쟁에 나서는 선생님 이 바로 아픈 현실을 겪었던 바로 친구의 아버지 이야기랍니다.
80년 광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때 친구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답니다.
학교를 갈려고 책가방을 챙기는데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신 엄마께서 학교에 가지 말라며 가방을 다시 뺏으셨답니다.
“아야 오늘 학교 나오지 말란다. 그러니까 너 동생하고 집에 꼼짝 말고 있어 알았지 밖에 나가지 말고 큰일 나니까 알았지 응!”
그땐 천진난만했던 친구는 나이가 어려 광주에서 벌어지는 어수선한 일들을 모른 채 식당에 장사하시러 나가시는 엄마의 말씀을 잊은 채 학교 수업 없다는 것만으로 좋았답니다.
그러다 저녁 늦게 엄마는 장사를 접으시고 들어오셨고 그때 엄마는 늘 불안한 모습으로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빠를 늦은 밤까지 기다렸답니다.
항상 일찍 오셔서 아이들과 놀아주시고 공부도 봐주시던 당정다감 든든하셨던 친구 아버지는 뭐 때문인지 어느 날 부터서 밤늦은 시간까지 술을 드시고 집에 들어오셨고 정막한 골목길에 울려 퍼졌던 아버지의 서글픈 노래 소리가 창문 넘어로 들려왔었다는군요.
(술취하신 목소리로 배호선생의 마지막잎새를 부르시며...) “그 시절 뿌르던 잎 어느새 낙엽은 지고~달빛만 싸늘이 허전한 가지~바람도 살며시 비켜 가건만~그 얼마나 사무친 상처 길래~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서글프고 애틋한 노랫소리가 창문넘어로 들려올 때면 친구는 늘 자고 있는 척을 하며 거실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를 들었다지요.
“아이고 뭔 또 술을 이렇게 많이 드시고 오세요...”
“미안해 여보 나 술 안마시면 힘들고 못 견뎌서 그래...미안...미안해...(우시며)흐흑”
“여보...당신의 신분을 잃지 말아요! 야속하게 떠난 제자들은 제자지만 아직도 당신만 바라보는 남은 제자들도 생각하셔야죠...이제 그만 술 드시고요”
“이 사람아 교실에 하나둘 빈자리를 볼 때마다 내 마음 얼마나 미여지는지 알아...스승보다 먼저 간 제자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미안 하는 줄 아냐고…….흐흑…….”
그때 친구는 부모님의 대화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아버지께서 학교일로 많이 괴롭고 힘드신가 보구나 하며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는군요.
오전에 식당을 나가시던 어머니께서 주무시는 아버지 몰래 친구를 부르시며 그날 친구에게신신당부말씀을 하셨답니다.
“ 너 아빠 밖에 못나가시게 잘 지키고 혹시 나가시려고 하면 아빠 붙잡고 아버지 못나가시게 꽉! 붙잡아야 된다! 잉!”
그리고 일어나신 친구 아버지는 식사도 안하신채 외출복을 주섬주섬 입고 친구를 부르시더랍니다.
“이리 와봐라...”
“아빠 어디 나가시려고요? 엄마가 아빠 못나가게 지키라고 했는데...”
“자 받아라! 이걸로 동생하고 과자 사먹어 그리고 아빠 학교 가서 금방 일 보고 들어올 테니까 걱정 말고 엄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아라 응! 동생 잘 돌보고 알았지!”
그렇게 친구 아버지는 친구에게 마지막 용돈을 쥐어 주시며 나가셨다합니다.
그날이 바로 친구 아버지의 기일이 되었다는 군요.
집을 나선 후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친구 아버지 걱정에 어머니는 아무 일도 못하시고 큰방 전화기 앞에서 멍하니 앉아 전화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리셨다지요.
그리고 기다리던 아버지의 소식을 받으시고 그 자리에 실신을 하시고 말았답니다.
“엄마! 엄마! 엉~엉~ 엄마! 일어나 봐요 네! 엉엉~”
그날 처진 어깨를 하시고 나가시던 친구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친구에게 마지막 웃음과 손 을 흔들며 나가신 후 차가운 시신으로 가족 품으로 돌아오셨다는군요...
민주화를 외치다 제자들의 뒤를 따라가신 친구 아버지 계엄군의 총격으로 이젠 더 이상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는 먼 하늘나라로 떠나가셔 버렸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바로 제 친구의 아버지 이야기랍니다...
친구는 지금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선택을 가만히 생각하다 볼 때면... 어릴 땐 아버지의 빈자리에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저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제자들의 빈 책상에 노여 진 흰 국화꽃 한송이...한송이 늘어나는 걸 바라보시며 그 얼마나 괴로움과 어른으로써 부끄러움에 그리고 누군가의 원망에 결단을 내리셨을 아버지가 이제는 자랑스러워한답니다.
그때 그 시절 제자들의 빈 책상들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부르셨다는 그 노래...그리고 제자들의 미안함과 괴로움에 술을 의지하시며 골목길에서 서글프게 부르셨던 그 노래.....
배호선생님의 “마지막 잎새” 를 친구를 대신해서 신청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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