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희망곡

정오의 희망곡

12시 00분

사연과 신청곡

아버지의 주판

올 연세 73세 이신 저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40년 가까이 조그마한 슈퍼마켓을 하신답니다.
제가 어릴 적 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쯤 일어나셔 오토바이를 끌고 공판장에 가셔 동네 분들이 살 야채와 채소들을 가져오셔 함께 팔곤 하셨죠.
그때는 대형마트가 없었을 때라 장사가 참 잘 되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 들이 아침, 저녁 걸이 반찬 준비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들면 부모님은 정신없었죠.
낮에는 제가 학교 갔다 오면 종종 오후 내내 2남 1녀 남매들이 번갈아가며 슈퍼를 지켜야만 했고요.
그럴 때면 동네 애들과 놀지 못해 짜증과 투정을 부리며 혼자 가게에서 과자하나 툭 찢어 먹으며 투덜투덜 될 때가 많았답니다.
하지만 좋았던 점 한 가지는 바로 내 마음대로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아버지는 저의 들이 먹는걸 막지 않으시고 적당히만 먹으라며 잔소리조차 하지 않으셨죠.
따분한 가게 생활이 힘드실 건데 아버지는 그 따분함을 달래시기 위한건지 매일 책을 읽으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돋보기를 끼시고 카운터 의자에 앉아 책을 보시는데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우리 형제들이 자연스레 본받아 지금도 바쁜 사회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한 달에 서 네 권 책을 읽는 습관이 몸에 배었답니다.
그리고 가게에 들리면 아버지는 옆에 놓인 계산기 보다는 항상 주판을 이용해 물건 계산을 하셨고 한치도 틀림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주판계산을 하셨답죠.
계산기는 아버지께서는 거의 쓰지 않으셔 어머니가 자주 쓰실 뿐이었죠.
손님이 많을 때는 주판으로 계산하시는 모습에 매일 어머니는 투덜대셨답니다.
“아이고 주판은 인자 그만 버리고 계산기 쓰세요. 요즘 누가 주판으로 가게일 본답니까? 어째 좋은걸 두고 고집부리실까 나...”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아버지는 묵묵히 주판을 움직이시며 계산을 하셨죠.
그때 한참 주산학원이 유행한 시절이었지만 저와 형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가게에 앉아 아버지께 주산을 배웠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는 주판계산 속도가 예전같지 않으시는지 커다란 계산기를 쓰시는데요.
장부 정리 하실때만 주판을 꺼내 쓰신답니다.
어느 때부터 동네에 대형마트가 생겨나고 옛날처럼 가게에 손님들이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계산기보다 손 운동도 되고 치매예방도 되는 주판이 좋다며 껄껄 웃으신답니다.
가게 처분하시고 이제 어머니랑 놀려도 다니시고 편히 쉬시라 말씀드려도 저의들 매달 용돈도 마다하시며 당신 용돈은 가게에서 번 걸로도 충분 하시다 며 받지도 않으신답니다.
그리고 당장 슈퍼를 그만 두면 분명 병마가 얼 커니 하며 올 것이고 특히나 우리 손주들 과자를 마음껏 줄 수 없어 싫다 하신 답니다.
일평생 슈퍼마켓 장사를 하시며 우리 삼남매 모두 대학까지 보내시고 시집 장가 다 보내시며 지금에 가게 자리인 3층 건물까지 마련하신 부모님...
그동안에 우리들 뒷바라지 하신다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지 부모가 된 저의 형제들은 이제야 부모의 사랑 그리고 감사를 사뭇 깨우쳐 나가고 있답니다.
지금도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여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손님들 물건을 값을 주판 튕겨가며 계산을 하고 계실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매일 매일 눈에 선하듯 그림을 그려봅니다.
아버지 어머니 늘 감사드리며 사랑합니다...
(혹 사연이 소개 되면 다음달 아버지 생신이셔 외식권이 필요하네요.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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