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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적 대보름날에는
대보름때 써야한다며 광에 숨겨둔 과일은 어찌 그리도 눈에 잘띄던지 볼때마다 침만 꼴깍 삼켰습니다.늘상 먹는 나물이야 별로였지만 대보름에나 먹을수 있었던 김은 정말 기다려졌습니다.서로 더 갖겠다고 언니 동생과 다투어서 쟁취한 김에 오곡밥 싸먹는 맛이라니!
아침을 먹고나면 집을 나섰습니다.더위팔러 가는것이지요.절친한 친구집에가 큰소리로 친구를 불러서 친구가 대답하면 "내 더위"하면서 줄행랑을 쳤지요.아침나절 내 이집저집 더위팔러 다녔습니다.절대 대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가 친구의 다정한 부름에 맥없이 대답하기도 해서 더위를 사기도 했지요.오후에는 동네 아이들 모두모여 노오란 콩을 들고 샘가로 갔습니다.어렵사리 눈썹위에 콩을 올리고 샘에다 풍덩 빠뜨렸지요.언제부터 행해졌는지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다래끼 없도로하는 풍습이었습니다.아랫샘 윗샘 가운데샘 우르르 몰려다니며 신이 났지요.
휘엉청 달이 밝으면 또 할일들이 있었습니다.남자아이들은 논두렁 밭두렁에 불을 질러 깡통에 나뭇가지를 담아 그걸 돌렸지요.어두웠던 동네는수많은 깡통불로 잠시 밝았습니다.그 사이 여자 아이들은 집집마다의 도구통(절구통)을 굴리러 다녔지요.주인에게 들키면 혼줄이 나는것이라 집 선정이 대단히 까다로웠지요.개 없는 집 대문없는 집 절구통이 적은집 이런 조건이 맞는 집의 절구통은 이유없이 수난을 당했습니다.누군가 먼저 절구통을 엎어 놓았다면 저만치 굴러놓고 왔지요.내집 네집 절구통이 소용없었습니다.함께 일을 저질러 놓고 다음날 아침 부모님이 물어보면 오리발을 내밀었지요.방귀뀐놈이 성내더라구 누가 그랬을까 하며 더 화를 냈지요.달이 중천에 뜰 즈음에도 아이들의 놀이는 계속 되었습니다.수박놀이 강강술래
달 지는걸 보고서야 겨우 집으로 들어갔던 대보름이었습니다.
왁자지껄 동네 떠나갈듯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 목소리는 이제 티브에서나 볼수 있습니다.
보름날에는 집밖에서 달맞이를 해야겠습니다.그리고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어야겠습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광주시 남구 송하동 삼익아파트101-1203호 박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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