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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과의 추억
아직 초등학생인 우리아이가 방학숙제하는걸 지켜보면서 세월이 많이도 흘러갔구나~하고 느끼게 되네요. 아이가 하는 숙제는 거의 컴퓨터로 처리하고 글씨를 직접 쓰는건 별로 없더라구요. 그건 중고등학교에 가면 더 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어릴때는 초등학교를 넘어 중학교에 오면 제일 먼저 갖고 싶은것이 바로 만년필이었어요. 하얀 노트에 검은색 연필 글씨만 보다가, 언니 오빠들이 적어 놓은 노트를 보면 정말 요새 말로 환상 그 자체였지요. 나도 빨리 커서 만년필로 글씨를 써야지 하는것이 초등학교때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만년필을 쓰려면 사실 귀찮은 것이 많지요. 만년필에 잉크를 넣으려면 보통 손 주위에 잉크 몇 방울은 묻혀야 하고, 또 잉크를 다 넣은 만년필을 휴지로 한 두번 정도 닦아 주어야 하지요. 또 가끔 종이의 질이 좋지 않을때는 만년필 촉 사이로 실 같은것이 끼여져서, 글씨가 번지기도 하고 또 손으로 그것을 빼 주어야 합니다. 잘못해서 만년필이 두르르르 굴러서 땅바닥에 떨어질 때면, 내 마음도 쿵하고 내려앉지요. 촉이 부러지기도 하고, 뭉뜩해지기도 하고, 또 갈라진 글씨가 되고, 어떤 때는 만년필 몸체도 부러지니까요.
그렇지만, 검은색, 감색, 하늘색, 코발트색 등 잉크 빛깔을 마음대로 골라서 사용할 수도 있고, 또 만년필로 적은 글씨는 연필이나 볼펜으로 적은 글씨보다도 더 우아하고 이쁘게 써졌습니다. 또 만년필은 단순히 필기구의 기능 뿐 아니라 어른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어요. 오빠들은 교복 주머니에 만년필을 꼽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으며, 또 천차만별인 만년필 종류때문에 좋은 만년필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냥 소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는 몽블랑이란 단어도, 알프스의 고봉이라기 보단 만년필 상품이라는 것으로 먼저 알게되었지요.
이렇게 만년필은 저뿐만 아니라 저와 같이 한 세대들에게는 특별한 의미의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전 지금도 가끔 만년필로 무엇인가를 끄적이기도 합니다. 컴퓨터에, 프린터에, 또 좋은 펜들 덕분에 사다 놓은 잉크병이 거의 줄지 않고, 또한 오래 전에 넣어 둔 만년필 속의 잉크는 말라 버려서, 무엇인가를 적을 때면 매번 잉크병을 찾아야 하지만, 생일 카드를 적을때, 부모님에게 편지를 쓸 때면 꼭 만년필을 이용합니다.
빛고을지금의 토요일코너 추억이야기와 만년필. 둘 사이에 줄긋기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이라는 공통 분모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광주시 남구 주월2동 101-25 정선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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