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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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인터뷰]영화 '허스토리' 일부 표현 사실과 달라..(이국언/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대표)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30~08:57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작가 최은영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지난 27일 이 관부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가 개봉했는데요. 영화 개봉 덕분에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일부 내용이 좀 사실과 다르게 표현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입장 들어보겠습니다. 이국언 대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 이국언 (이하 이) - 네, 안녕하십니까.
◇ 황 – 먼저 이 영화의 소재가 된 허스토리의 소재가 된 관부재판 내용부터 한번 들어볼까요.
◆ 이 – 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고도 얘기를 합니다마는 그 피해자들과 또 근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10명이 원고가 돼서 1992년에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지부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소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12년의 재판 끝에 2003년도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 황 – 네, 최종적으로는 패소했다는 말씀이신데. 하지만 그 과정 중에 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랄지 그다음에 여자 근로정신대 문제들이 사회적 관심이 좀 되는 그런 또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던 거, 영향도 있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 이 – 네, 그렇습니다. 비록 사건은 패소했지만 관부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1심에서 최초로 인정해서 피해자 각 1인당 당시 30만 엔씩 배상하라고 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얻어내기도 했었고 또 아무리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성적 노예생활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해서 법정 투쟁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보면 용기 있는 자기 고백 또 당당한 투쟁 또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재판 투쟁을 이끌어 왔던 실존 인물들, 이런 것들 때문에 관부재판이 상당히 의미가 있고 그걸 다룬 허스토리가 주목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황 – 네, 굉장히 의미 있는 영화이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 영화의 내용 일부가 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발표하셨는데 어떤 부분이 사실과 다른 건가요?
◆ 이 – 두 대목인데요. 하나는 후지코시 군수공장으로 동원됐던 근로정신대 소녀들 15명이 어느 날 외출을 갔다가 일본 군인에게 붙잡혀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것으로 표현이 되고 있는데. 영화만 보면 마치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피해자들이 나중에 대부분 성노예로 다시 끌려가서 강요당한 것처럼 누구라도 오인할 수밖에 없도록 한 부분이 매우 아쉽고 두 번째로는 관부재판 원고로 참여했던 열 분의 원고 중에서 많은 분들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만 원고 중에 지금 두 분이 지금 현재 생존해 계시고 두 분 중에 한 분이 광주에 계시는 양금덕 할머니이신데 영화가 아무래도 일본군 위안부에 초점이 맞춰서 구성되다 보니까 그랬던지 원고가 모두 돌아가신 것으로 표현이 됐던 것은 상당한 결례였던 것 같습니다.
◇ 황 – 생존해 계시는 우리, 특히 양금덕 할머니를 예를 들어주셨는데 그런 분들에 대한 결례라는 말씀이시네요? 사실 왜곡이 좀 있고 그다음에 생존하신 분들에 대한 결례가 좀 영화 속에 있다는 이야기신데. 그 부분에 대해서 영화감독과 좀 이야기를 나눠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 이 – 네, 저희들의 지적에 대해서 제작사와 감독이 곧바로 양금덕 할머니를 찾아뵙고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본인이 양해할 수 있는 부분과 영상을 통해서 다수 대중들한테 끼치는 실제적인 파급력을 생각할 때 이게 이제 다 회복이 된다고 할 수는 없겠죠. 특히나 이제 역사물에서 중요한 팩트가 이렇게 왜곡이 됨으로 인해서 사실은 근로정신대를 잘 모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다룬 영화라고 해서 극장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근로정신대 할머니들도 나중에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일반적인 형태였는가 보다고 오해를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고 또 지금도 저희가 나름대로 활동도 하고 그동안 할머니가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로 오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다수거든요, 사실. 그런데 이런 분들한테는 대체 영화를 보니까 할머니가 다 말씀을 못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아, 저런 경우였구나 하고.
◇ 황 –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거죠.
◆ 이 – 그렇죠. 그 착각에 대한 확신을 가져버릴 수 있도록 그렇게 좀 돼 버린 것 같습니다.
◇ 황 – 그래서 이런 방송이나 이런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왜곡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될 것이고 또 그 말씀을 우리 오늘 대표님이 해 주시는 건데요. 실질적으로 이런 과정들, 정말 위안부 할머니 문제도 그렇고 특히 광주에서 열심히 우리 대표님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함께했던 근로정신대 할머니 문제도 지금 어느 정도 계속 이야기는 되고 있습니다마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문제를 좀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대표님. 많은 부분이 해결이 됐습니까?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나요?
◆ 이 – 그동안 양금덕 할머니를 예를 들자고 하면 관부재판으로 시작을 해서 24년째 법정투쟁을 하고 있는데 일본에서의 재판은 모두 패소하고 말았고 2012년에 광주지방법원에 그 패소한 사건이 지방법원 또 2015년 광주고등법원에서 승소해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지가 3년째입니다. 그런데 이제 최근에 밝혀졌습니다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사법농단 중에 하나가 바로 일제 과거사 문제를 정권의 비위에 맞게끔 상고법원 설치문제하고 거래를 하려고 했던 것들이 드러나서 피해 할머니들이 지금 연세가 90이셔서 사실 하루가 다급한 상황이고 지금 모두들 병석에 누워계시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 문제를 다른 사건과 같이 보려고 할 게 아니라 이건 어떻게 보면 시간 다툼을 하고 있다고 하는 이런 다급성을 조금 더 인식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황 – 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일단은 이 근로정신대 할머니 문제, 특히 또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대해서 서로 혼동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정도로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잘 모르고 있는데 실은 당사자인 분들은 24년째 이 투쟁을 해 오셨던 거 아니겠습니까?
◆ 이 – 네, 그렇습니다.
◇ 황 – 그래서 그런 부분을 좀 더 명확히 서로 알아야 되고 앞으로 특히 나이가 지금 90세가 다들 넘어가시는 고령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좀 신속히 풀어드려서 그분들의 한도 풀어드리고 또 더 중요한 것은 이 싸움을 할머니 세대에서만 끝내는 게 아니고 이 이후의 세대들이 받아서 계속적으로 진실을 좀 알리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끊임없이 좀 계속돼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 대표님은 어떤 생각이신가요? ◆ 이 – 네, 그렇습니다. 관부재판은 끝났지만 관부재판에 참여했던 피해 할머니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양금덕 할머니가 갖고 있는 법정투쟁도 마찬가지고 양금덕 할머니는 24년째 그 싸움을 하고 계시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관부재판에 참여하고 안 하고의 여부를 떠나서 피해 할머니들이 지금 일본 정부의 계속된 사과와 법적 책임을 묻는 싸움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제 물리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면 이 피해 할머니들은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저는 이제 무엇보다도 이거를 피해 당사자 문제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외교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제로 삼으려고 하는 정부의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우리가 역사의 아픔을 공감한다고 하지만 그 시절을 살지 않는 한 체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공감할 수 있도록 충분히 역사 교육에서 반영하는 것이 좀 필요할 것 같고요. 그다음에는 피해자들의 눈물과 한, 이 고통 그다음에 좌절하지 않고 용기 있게 달려온 이 투쟁의 어떤 기록, 이런 것들을 잘 보존해서 그 시대를 살지 않는 사람들한테 깊은 울림과 교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이 작업들을 지금부터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황 – 네, 대표님 현재 생존해 계시는 이 근로정신대 할머니 분들은 지금 몇 분 정도 되시나요?
◆ 이 – 올해 2월에 파악한 바로는 국외로 일본이나 중국 등으로 동원된 경우에 중국 쪽으로 187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광주 같은 경우에는 12명, 전남의 경우에는 스물 세분이신데 이분들 역시 구십 고령이 넘으셔서 시급을 다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황 –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싸움도 기록해야 하고요. 그다음에 우리 세대가 피해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들 스스로의 문제로 인식하고 계속적으로 이 부분들을 좀 이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씀 참 와 닿는데요. 마지막으로 관련해서 더 어떤 활동들을 계획하고 계신지도 한 말씀 해 주시죠.
◆ 이 – 지금 현재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또 일본에서 있는 재판들은 모두 마무리되고 마지막 하나의 법적 구제의 수단으로 우리 사법부를 통한 해결의 길을 지금 찾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가실 날이 사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의 경우에는 태평양 전쟁, 광주시 희생자, 광주유족회 이금주 회장님의 사료랄지 또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어떤 투쟁 기록들을 하나하나 지금 정리하는 작업들을 지금부터 상당히 연차적으로 시간이 걸릴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런 것들에 관심을 두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황 – 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 – 네, 감사합니다.
◇ 황 – 지금까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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