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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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인터뷰]5.18계엄군의 첫 공개 사죄... 5.18 진실 규명의 출발점 돼야!(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최용주 조사1과장)

5.18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계엄군의 사죄와
유가족의 용서가 41년 만에 처음 이뤄졌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는데요.
 
계엄군의 첫 양심선언이
5.18의 새로운 진실을 밝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큽니다.
 
이번 만남을 총괄한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최용주 조사1과장과 이야기 나눠봅니다.
 
/인사/
 
1. 5.18 당시 계엄군의 사죄와 유족의 용서, 곁에서 어떤 심정으로 지켜보셨는지?
 
2.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유족을 직접 만나 사죄를 한 건, 4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3. 40여 년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고 박병현(당시 25)씨는 1980년 5월 23일 농사일을 돕기 위해 고향인 보성으로 가는 길에 광주시 남구 노대동 소재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지나다가 순찰 중이던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의 ㄱ씨에게 사살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ㄱ씨는 “1개 중대 병력이 광주시 외곽을 차단하기 위해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 중 소로길을 이용해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민간인 젊은 남자 2명이 저희(공수부대원)를 보고 도망해 ‘도망가면 쏜다’며 정지할 것을 명령했으나 겁에 질려 도주하던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사격했다”)
 
4. 진상규명조사위는 어떻게 해서 당시 계엄군을 만나게 됐는 지?
 
5. 가해자가 유족을 찾아가는 것도, 유족이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도 이야기 해주시죠.
 
6.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의 양심 선언적 내용들.. 본인 스스로 고민이 컸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 분의 입장에서도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그 분이 가장 고민하고 우려했던 부분이라면?
 
7. 진상규명조사위가 중심이 돼 그 역할 또한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시는 지?
(도망치는 비무장 시민들을 겨냥해 총을 쐈다는 건 자위권 차원에서 사격했다는 계엄군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언)
 
-다른 계엄군의 양심고백으로 이어질지?
 
8. 물론 계엄군들이 광주 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유린한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군인의 신분으로 상명하복 원칙에 따라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 또한,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닐까요? 그래서 평생 죄책감 속에 살아야 했고요.
 
-치유 과정이 필요해 보여?
 
9. 진상규명위원회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지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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