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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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70주년, 이제는 말 할 수 있다._제주 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박진우 사무처장_시선집중광주_20180403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8:10~08:53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작가 최은영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얼마나 청취자 분들께서는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1948년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제주도민 3만 명이 학살당한 그런 안타까운 사건인데요. 분단과 이념의 갈등으로 빚어진 제주 역사상 최대의 비극입니다. 올해로 그 사건이 일어 난지 딱 70주년이 되었는데요. 저희 시선집중광주에서는 4.3 70주년을 맞아서 지역사회가 함께 아픔을 나누고자 준비한 시간입니다. 오늘 추념식 준비에 바쁘시겠지만 제주 4.3사건의 의미 그리고 행사내용을 들어보겠습니다.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박진우 사무처장 연결돼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장님.

◆ 제주 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박진우 사무처장 (이하 박) - 네 안녕하세요.

◇ 황 - 오늘 행사 준비로 몹시 바쁘실 텐데 어떤 행사들이 지금 준비되어 있습니까?

◆ 박 - 오늘은 4월 3일인데요. 전국의 21개소에서 분향소가 운영이 되고 있고요. 제주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서 유족들에게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하게 되고요. 그리고 광주에서는 구 전남도청 앞에서 분향소와 문화행사 이뤄지게 되고요. 전라남도에는 여수의 이순신광장과 목포역 앞에서 똑같이 분향소와 함께 문화재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오늘부터 4월 7일까지 분향소가 진행되고 매일 각 종교별로 추념 의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황 - 참 아픈 그런 우리 현대사의 아픈 사건인데요. 오늘 문재인 대통령께서 제주를 방문하셔서 어떤 말을 하실까도 주목되고 있는데 어떻게 예상하고 계십니까?

◆ 박 - 저희가 예상하기로는 문재인 말씀은 문재인 대통령의 첫 말씀은 제주 4.3항쟁은 대한민국 역사 입니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걸로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부분은 현장에 가봐야 할 거 같고요. 제주 4.3이 지난 70년 동안 폭동 반란 부분이 아닌 항쟁으로서 그리고 제주만의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 역사로서 당당하게 자리를 설 수 있게끔 말씀을 해주시고 지난 70주년동안 한에 쌓여 있었던 유족들의 가슴을 풀어줄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황 -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서 두 번째 대통령으로서는 방문하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 박 - 네 그렇습니다.

◇ 황 - 제주 4.3사건.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고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떤 사건인지 짧게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박 - 70년 전에 제주에 있었던 사건인데요. 1947년 기미 독립투쟁 28주년 기념대회에 있었는데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해서 경찰과 서북청년단들의 탄압에 대한 저항이 있었고요. 그리고 단독성과 단독정부를 반대로 해서 48년 4월 3일 날 제주도 무장대가 54년 9월 20일까지 7년 7개월 동안 제주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 그리고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약 3만 명에서 9만 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 황 - 3만 명 정도면 제주도민의 10%가 넘는 그런 숫자 아니겠습니까?

◆ 박 - 네. 당시 제주 인구의 10% 넘는 숫자죠.

◇ 황 - 이 부분들 정말 제주민들로서는 굉장히 아픈 트라우마기도 하고 제주도에 가보면 제삿날이 이 시간에 모여 있는 그런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 박 - 까마귀 제사라 해서 같은 날 적게는 20-30가구씩 많게는 400가구가 한 날 한 시에 온 동네가 제사를 지내는 그런 마을들이 꽤 있습니다.

◇ 황 - 그리고 더 아픈 것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4.3에 대한 진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고 있지 못하다는 건데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제주도민으로서 처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아프실 거 같아요.

◆ 박 - 네. 지난 47년 4.3이 일어나고 나서 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통을 당했고요. 한국전쟁 속에서 많은 고통을 당했던 거죠. 그래서 60년 4.19가 터져서 민주화의 바람이 잠시 불 때 진실의 운동을 했습니다만 5.16 군사반란으로 다시 묻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동안 폭동, 반란, 심지어는 교과서 속에서 그래왔던 거죠. 이 부분에 대한 진실 규명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고요. 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이뤄진 시대의 흐름으로 2000년에 4.3특별법이 제정이 되고요. 그로 인해서 2003년 10월 15일 4.3사건 진상 보고서가 정부보고서에 채택이 되고 여기 2003년 10월 30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해서 사과를 했습니다. 2006년 4월 3일 날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내려가서 유족들의 아픔을 사과하고 공권력에 의한 부분을 사과하면서 역사에 자리매김이 시작되었습니다.

◇ 황 -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제주를 방문해서 4.3사건에 대해서 공권력이 민간인을 학살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공적으로 하신 거 아니겠습니까?

◆ 박 - 맞습니다.

◇ 황 - 그게 참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 박 - 네. 그 간에는 공권력이 제주도민들을 학살한 부분이 아니고 제주민들이 폭동이고 반란을 일으켜서 싸움했다는 걸로 되어 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히 국가가 공권력에 의해서 전체 80%가 희생되었다는 희생자들의 80%가 희생된 부분을 인정을 한 거고요. 미분양 보고서 비밀 기록에도 명시 되어 있는 것을 세상 밖으로 꺼냈습니다.

◆ 박 - 결국은 공권력이 저항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학살한 부분에 있어서는 80년 5.18과도 일정 부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 황 -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확실한 진상규명 우리 국민들 스스로가 4.3사건 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말씀해주시죠.

◆ 박 - 광주가 그랬던 것처럼 제주4.3 항쟁은 폭동 이런 부분이 아닌 통일 국가를 위한 제주 도민들의 치열한 투쟁의 한 부분이었던 게 생각이 되고요. 그런 부분을 자리 매김을 새롭게 해야 되는 그런 큰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 황 - 앞으로 그런 과제를 꼭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특히 광주도 함께 그런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거란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 - 네 고맙습니다.

◇ 황 - 지금까지 4.3사건 70주년 범국민 위원회 박진우 사무처장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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