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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맛깔스럽고 인정넘치는 전라도 설음식_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_20190204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
■ 맛깔스럽고 인정넘치는 전라도 설음식
경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명절 분위기는 막을 수 없나 봅니다. 설 연휴를 앞두고 평소엔 한적했던 오일장터마다 모처럼 활기가 돌았습니다. 새벽부터 장보러 나오신 엄니, 아부지들로 장바닥이 온통 북적북적 시끌시끌했습니다. 어르신들이 기어이 사야 할 물목이라는 게 그저 내 새끼들이 좋아하는 것, 잘 먹는 것입니다. 그 철석같은 기준으로 생선전 과일전·채전·나물전·푸줏간 등등 장터를 구석구석 돌고 오신 뒤 삶고 데치고 졸이고 찌고 굽고 볶으면서 자식들을 기다리신 겁니다.
그런데 시골 엄니, 아부지들의 장보기가 딱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며칠에 걸쳐 가까운 오일장 몇 곳을 더 트거나, 똑같은 장을 오일 간격으로 여러 차례 가시는 겁니다. 생선 한 마리, 사과 한 알도 맘에 드는 좋은 것을 골라야 하니까요. 손수 지어 수확한 농산물, 직접 캐고 따온 해산물도 그렇습니다. 좀 못난 것들은 죄다 당신들이 미리 드시고 때깔 좋은 최고 상품으로만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설날 아침 집집이 잘 차려진 밥상은 참말로 귀하고 정성 가득합니다. 그릇그릇 엄니아부지의 애틋한 사랑과 구구절절 이야기도 들어있습니다.
그렇다고 설음식이란 게 오로지 집안 식구들끼리만 오순도순 나눠먹고 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나이 많이 잡수신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면서 세배를 드리는 곳이 많은데, 그럴 때면 정성스레 장만한 설음식을 챙겨가 대접하기도 합니다. 물론 마을회관이나 넓은 마당에 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합동 세배를 하고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는 곳도 있습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 찾아올 자식이 없는 노인들, 형편이 어려워 명절을 제대로 쇠지 못하는 이웃들, 요즘에는 이역만리 외국에서 온 노동자까지, 내 부모 내 형제자매가 아니어도 두루두루 주위를 살피는 것이 바로 오래오래 대물림해온 설 명절의 미풍양속입니다.
명절이면 수많은 전라도 사람들이 고향을 오고가느라 홍역을 치릅니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배 타고 고향집에 왔다가 한나절 만에 다시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공장으로,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인천으로 가야만 했던 가슴 아픈 이주의 역사가 서리서리 깊습니다. 숱한 객지살이 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도 맛깔스런 고향 음식과 그 안에 담긴 훈훈한 사랑과 인정에서 나오지 않았을까요. 설날 아침입니다. 그 귀한 고향음식으로 든든하게 몸과 맘을 채우고 일 년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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