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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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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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13일/ 이화경/ 그린 아이즈

이화경 소설가
- 그린 아이즈


“장군님, 질투를 경계하셔야 됩니다. 자고로 질투란 놈은 초록 눈빛을 가진 괴물입니다. 그 놈은 사람의 마음을 삼켜 내리기 전에 다독거리고 주무르고 진탕 즐기는 놈이죠.”

방금 읽어드린 문장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인 에 나온 대사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는 사랑과 질투에 대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일전에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비극 작품인 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했듯이, 이제까지의 제 삶을 다시 비춰보는 계기로 다시 읽어보고 있습니다. 눈으로만 읽지 않고 소리 내어 읽는 재미가 괜찮더군요. 많은 분들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알고 계시지만, 이런 자리를 빌려 인생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혜안을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햄릿 증후군이니, 오셀로 증후군이니 하는 심리학 용어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비롯된 것만 봐도, 프로이드 같은 정신분석학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침대머리맡에 두고 연구와 임상치료용으로 실제 활용했다는 점만 봐도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는 최고인 듯 싶습니다.
다시 로 돌아가면, 주인공 오셀로는 무어 출신의 장군입니다. 전장에서 승승장구하면서 훈장을 받지만 천민 출신에다 나이든 흑인이기도 합니다. 불같이 사랑에 빠져 단숨에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배우자 데스데모나는 명문가의 귀한 딸이며 백인에다 아주 젊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온 겨레를 주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한 진주로 여겼던 아내를 오셀로는 잔인하게 살해합니다. 왜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오셀로는 죽이기까지 했을까요?
비극적인 건, 오셀로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의 질투는 오직 사랑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면서 말이지요. 앞에서 읽어드린 대사를 한 인물은 오셀로가 믿어 의심치 않는 부하 이아고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초록 눈빛을 가진 괴물인 질투를 오셀로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투여해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아고는 말로 오셀로를 들었다 놨다 조종합니다. 질투를 유발하는 계략의 언어는 말 그대로 오셀로를 독약으로 내장을 쥐어뜯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으로 몰아가고 피 속에 들어가 모든 신경을 마비시켜버립니다. 한마디로 말의 무시무시한 가공할 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든 시커먼 얼굴빛의 무어인 오셀로가 청순하고 아름다운 베니스의 처녀 데스데모나를 사로잡은 것도 모험담 덕분이었습니다. 스릴 넘치는 전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데스데모나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들의 사랑의 계기가 된 오셀로의 언어는 이아고의 언어로 파경에 이르게 됩니다.
고귀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오셀로는 이아고의 계략에 찬 언어에 휘둘리면서 광기에 빠집니다.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언어들은 오셀로의 상상 속에서 널을 뜁니다. 아내가 부정하다고 믿는 성적 질투심에 사로잡힌 순간부터 오셀로는 모든 몸짓과 표정을 왜곡해서 해석합니다.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 억측의 결말은 비극이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오셀로가 아내인 데스데모나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애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초록 눈빛을 가진 괴물인 질투가 상상 속에서 날뛰는 허구라는 걸 좀 알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물론 불가능하다는 것도 압니다. 영어권에서는 초록눈인 그린 아이즈(green eyes)라는 말은 ‘질투하는 마음’을 가리킨다고 하는데요, 물론, 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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