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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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31일/ 박중환/ 꿈속의 동창회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꿈 속의 동창회

우리 사회에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모임들이 있습니다. 동창회나 동문회, 향우회와 같은 모임들입니다. 추억과 옛 정을 나눌 수 있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임들이지만 이러한 모임들이 늘 참석자들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모이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바라보아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줄어듭니다. 그럼에도 모임을 주도하고 초청하는 사람들은 수십명 수백명의 많은 참석자를 모아야만 성공적인 모임이었다고 생각하는 모순된 신념에 늘 빠져있습니다. 소란스러운 그곳에서 함께 추억을 떠올리거나 그리웠던 지인들과 깊은 정담을 나누기는 어려운 분위기일텐데도 말입니다. 커진 동창회는 쉽게 정치화되어갑니다.

요즈음과 같은 선거의 계절에는 이러한 모임의 순수한 동기가 유지되기 더 어렵습니다. 모인 사람들 각자의 사업상의 협력요청이나 집안 대소사에 대한 참가 걱정까지 더해지면 모임 참석에 대한 의욕은 부담으로 바뀝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아야만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왜곡된 결혼식과 장례식 문화도 블랙홀처럼 그 배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유럽을 비롯한 서구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허영심이고 주변 시선의 노예가 되어있는 모습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취미 문화모임이나 종교단체 모임과 함께 동창회와 같은 연고를 토대로 한 모임을 찾는 이유는 사실 심각한 심리적 필요에서 출발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한국리서치에서 지난 4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26%가 자주 혹은 심하게 사회적 고립감과 고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국민 4명 가운데 한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다면 이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고령화와 1인가구의 증가, 결혼을 미루는 청년 1인 분거가구가 늘어나는 것도 고독 인구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힘든데 고립감으로 더 고통을 겪는 우리 이웃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피난처 하나를 가꾸기 위해서라도 이 해방공간을 망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해야 합니다. 모임을 찾는 사람들도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추억을 회상하고 옛 정을 나눌 수 있는 작은 모임들을 지향할 일입니다. 작고 의미있는 꿈 속의 동창회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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