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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7일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 진상규명이 중요합니다” <김성진 민주노총 광주법률원 변호사>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179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어느덧 11개월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아직도 무안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상규명이 전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고 조사를 맡은 곳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입니다. 줄여서 '사조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조위의 소속이 국토교통부입니다. 국토부는 사고가 난 무안공항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입니다. 시설 관리 책임도 국토부에 있습니다. 안전 감독 책임도 국토부에 있습니다. 즉, 조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 조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셀프 조사'의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법으로는 국토부가 사고 조사에 관여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산과 인사권을 쥐고 있는 곳이 국토부입니다. 사조위가 상급기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조사 과정에서 여러 의혹을 낳았습니다. 사조위는 충분한 근거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조종사가 비상절차 중 엔진을 껐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이번 참사가 조종사 개인의 과실인 것처럼 들립니다.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받았습니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콘크리트 구조물. 활주로의 위험한 콘크리트 둔덕입니다. 그런데 사조위는 사고 발생 후 한참이 지나도록 다른 공항에도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긴급 안전 권고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명백한 위험을 사실상 방치한 것입니다. 여론에 떠밀려 10월에야 권고를 내놨습니다. 그마저도 모호한 표현을 썼습니다. "콘크리트 둔덕"이 아니라 "인근 시설물"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국민의 안전보다 상급기관인 국토부의 책임을 덮어주는 데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가족들은 진실을 알기 위해 핵심 자료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블랙박스 음성기록, 비행기록 입니다. 하지만 사조위는 여러 이유를 대며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12.29. 여객기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의 취지에도 어긋납니다. 특별법은 참사 피해자의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핵심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여러 전문가와 함께 검증하는 것이야말로 조사의 공정성을 높이는 길입니다.
경찰도 문제입니다. 경찰 역시 사조위의 결과만 기다리며 수사를 소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책임 규명을 위한 그 어떤 절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총체적 부실 상황입니다.
이 꼬인 매듭을 풀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는 법안들이 여러 건 제출되어 있습니다. 사고조사위원회를 국토부에서 분리하는 법안입니다. 독립적인 기구로 만드는 법안입니다. 조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진상규명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립된 조사위원회가 구성될 때까지 현재 조사를 중단해야 합니다. 모든 자료를 독립된 조사위원회에 이관하고 조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공정한 조사가 가능합니다.
진상규명은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따지는 일이 아닙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우리 모두의 안전한 미래를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진실은 우리가 외면할 때 어둠 속에 갇힙니다.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사로 돌아가신 희생자 분들과 아직도 무안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사 소식을 듣고 주변 지인들에게 불안한 마음으로 안부를 물었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지켜봐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