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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6일 “불가사리가 알려주는 회복력의 자연학” <임하리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부관장>
바다에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기 쉬운 작은 생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고 조용한 존재들이야말로 바다 생명망을 떠받치는 중요한 축이 되곤 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불가사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저는 해양자연사박물관에서 오랜 시간 다양한 해양생물을 관찰해왔습니다. 대형 포식자보다도 제가 더 자주 떠올리는 생물이 바로 불가사리입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생명의 힘과 메시지는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불가사리’라는 이름의 근원부터 살펴보면, 많은 분이 이 단어를 ‘불가사의(不可思議)’와 연결해 “참 신기해서 그렇게 부르나 보다”라고 생각하시지만, 실제 이름은 ‘불가살이(不可殺伊)’입니다. 뜻 그대로 “죽일 수 없는 것, 쉽게 죽지 않는 생물” 이라는 뜻이죠. 불가사리의 능력중 가장 뛰어난 능력은 재생 능력입니다. 팔이 잘려 나가도 다시 자라는 생물, 그 생명력을 “쉽게 죽지 않는다”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불가사리는 오래전부터 ‘회복력의 상징’으로 불려온 존재입니다. 신기함 때문이 아니라, 살아내는 힘 그 자체를 보고 붙인 이름이죠.
불가사리의 재생 능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적으로 연구되어 왔습니다. 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불가사리는 팔이 잘려도 다시 자라며, 일부 종은 팔 하나만 남아 있어도 나머지 몸 전체를 재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발달생물학과 재생의학 분야에서도 참고되는 대표적인 자연 재생 사례입니다.
또한 환경이 교란되면 불가사리의 개체수도 불안정해지는데, 이 역시 해양학에서 잘 알려진 현상입니다. 불가사리가 너무 늘어나 산호를 갉아먹는 사례는 결국 바다 환경이 이미 불안정하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즉, 불가사리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바다가 우리에게 보내는 직접적인 지표 생물이기도 합니다. 저는 불가사리를 볼 때마다 바다와 생명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조용한 말들을 떠올립니다.
첫째, 움직임이 느리다고 멈춘 것이 아니다. 불가사리는 눈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천천히 움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다른 자리로 나아가 있습니다. 우리 삶의 변화도 대부분 그렇게 다가오죠. 보이지 않지만 누적되는 작은 움직임들이 결국 길을 만들어냅니다.
둘째, 부서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불가사리는 잘려나간 그 상처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을 틔웁니다. 그 자리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 생명의 출발점이 됩니다.
셋째, 환경이 건강해야 생명도 건강하다. 불가사리의 개체수 변화는 바다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자연은 늘 우리보다 먼저, 아주 작고 조용한 방식으로 변화를 알려줍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누군가에게는 잘려나간 것 같은 순간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힘들어 놓아버린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불가사리를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부서진 자리에서 다시 자라나는 것도 생명이다.” “작은 움직임도 꾸준히 이어지면 결국 길이 된다.” 여러분의 새롭게 돌아오는 한 해도 그 회복력과 꾸준함 위에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