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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5일 “지금, 여기의 온도” <한은미 전남대 화학공학과 교수>
한 해의 끝자락, 마음속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이 층층이 쌓여가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누군가에겐 특별하고 누군가에겐 평범할 오늘을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시간의 감각을 '사회정서적 선택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시간이 충분하다고 믿던 시절에는 새로운 자극과 확장을 쫓지만, 시간의 유한함을 깨닫는 시기에 접어들수록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관계의 ‘깊이’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도 해마다 다른 얼굴로 섭니다. 아이에게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성인에게는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책임’으로, 그리고 삶의 후반으로 갈수록 ‘기억과 관계’의 얼굴로 다가옵니다. 크리스마스가 변한 게 아니라, 그 시간을 통과하는 우리의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날이라기보다, 내 존재의 온도가 어떠한지를 조용히 묻는 시간이 됩니다. “오늘의 나는 어떤 온도로 이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마음의 온도가 낮아지면 사람은 떠난 이름들과 빛바랜 풍경만 세게 되지만,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면 내 삶에 남아 있는 얼굴들을 세게 됩니다. 내 서툰 안부를 기다려줄 사람이 아직 곁에 있는지 말입니다. 흔히 관계의 어려움을 '성격 탓'으로 돌리곤 하지만, 임상적으로 보면 이는 '경험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확인하게 되는 안타까운 사실은, 어릴 적 타인과 부딪히고, 조율하고, 불편함을 견뎌보는 이른바 ‘협상과 마찰’의 경험이 부족할수록 성인이 되어 타인과의 접촉 자체를 거대한 스트레스이자 ‘침범’으로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성벽을 쌓고 자신을 가둔 채, 타인의 틀렸음을 냉소하며 고립된 옳음을 증명하려 애쓰는 것이죠. 관계는 줄고, 서늘한 판단만 늘어갑니다.
지금, 여기의 온도. 어릴 적처럼 크게 들뜨지 않아도, 설레지 않는 무뎌진 감각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 마음의 결을 들여다보고, 내가 먼저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할 수 있는 '능동적인 힘'을 갖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차가운 냉소의 시대를 녹일 가장 뜨거운 ‘존재의 마찰열’이 될 것입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가 화려한 기적을 가져다주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대신, 거친 세월 속에서도 끝내 저버리지 않은 당신의 '먼저 건네는 온기'만은 보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먼저 용기내어 지핀 그 작은 불씨가, 식어가는 세상을 데우고 내일의 당신을 다시 살게 할 가장 확실한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