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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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주민이 주민의 일상을 연구하는 도시” <설정환 재설정도시연구소 대표>

 도시는 늘 변화하고 있지만, 그 변화가 누구의 시선에서 설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묻지 않게 됩니다. 새로운 시설과 사업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정작 그 공간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주민의 경험은 정책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도시를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행정이 제공하는 결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문제는 통계보다 일상에 더 많이 숨어 있습니다. 언제 길이 가장 위험한지, 어느 시간대에 돌봄이 비는지, 어떤 골목이 밤에 가장 어두운지는 주민들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이런 정보는 보고서보다 정확하고, 현장보다 더 생생한 데이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정책에 앞서 주민의 생활을 먼저 연구해야 합니다.

 

 다른 지역을 방문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네의 분위기를 살펴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표정과 거리의 소음, 상점의 밀도를 통해 그 지역이 어떤 삶의 리듬을 가지고 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그 모든 장면은 이미 하나의 사회 조사이자 생활 통계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활 정보가 행정의 정책 설계로 연결되는 통로가 거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주민은 더 이상 의견만 제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과정을 함께 설계하는 연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을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실험하고 검증하는 연구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생활 실험실로 작동할 때 정책은 종이 위가 아니라 현실에서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주민 연구는 결코 거창한 학술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골목을 함께 걷고 불편을 기록하며, 작은 실험을 해 보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곧 연구입니다. 어린이공원의 이용 실태를 조사하고, 통학로의 위험 요소를 기록하며, 쓰레기 배출 시간의 문제를 조정해 보는 일들이 정책의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공간과 제도가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주민들께서 모여 연구하고 실험할 수 있는 거점 공간, 그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예산과 행정 지원, 그리고 연구 결과가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실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행정의 역할 또한 달라져야 합니다. 계획을 일방적으로 설계하는 주체가 아니라, 주민 연구를 뒷받침하는 조력자이자 조정자가 되어야 합니다. 돌봄, 교통, 주거, 환경, 문화 정책이 하나의 생활 맥락 속에서 함께 설계될 때 비로소 도시의 문제는 통합적으로 다뤄질 수 있습니다.

 

 광주·전남 행정통합 역시, 주민이 스스로 지역을 이해하고 변화의 방향을 설계할 때, 삶을 바꾸는 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