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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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1일 “복어와 문지방의 가시나무” <임하리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부관장>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려 하고 있습니다. 많은 계절들이 지나가는 동안, 저는 남도 끝자락의 바다를 지켜보며 자연이 우리에게 전하는 속삭임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바다가 가까이 있지만,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그 넉넉한 풍경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화려한 말보다 조용한 움직임으로, 때로는 파도 하나로, 자연은 우리가 잊고 사는 감각을 일깨워주곤 했습니다. 

 

 저는 가시복어를 오랜 시간 관찰하면서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생물을 극적인 순간—몸을 부풀리고 가시를 드러낼 때—만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시복어의 대부분의 시간은 평온했습니다. 서두르지 않는 호흡, 크게 요동치지 않는 움직임, 바다의 흐름 안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살아가는 조용한 방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침착함이 이 생물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복어(복+어)’라고 부르는 이 생물의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자연스레 ‘복(福)’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 한자 표기는 (하돈)이라 적었습니다. ‘강 하(河)’자와 ‘돼지 돈(豚)’자를 쓰며, 부풀었을 때 돼지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된 이름이었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복어(鰒魚)’라고도 적었는데, 이때의 ‘복(鰒)’은 전복이나 해산물을 뜻하는 글자에 가까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복(福)’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글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복을 주는 고기’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이 점이 늘 흥미로웠습니다. 사실과 의미가 조금씩 어긋나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 틈새에서 오히려 더 큰 상징을 읽어냈습니다. 복어는 몸에 가시를 달고 있는 생물입니다. 위험을 느끼면 몸을 둥글게 부풀리며 가시를 세워 자신의 몸을 보호합니다. 그 짧은 순간에 내 자신을 지키며 보호합니다.

 

 하지만 복어는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하고 작은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평범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가시’라는 존재 자체를 특별히 여겼습니다. 잘못하면 다치기도 하지만 나쁜 기운을 막는다고도 여기고, 때로는 나쁜 것을 찌르고, 나를 보호하며, 좋은 것을 지킨다는 상징으로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사람들은 가시를 달고 있는 이 물고기에, 그저 생태적 특징을 넘어 ‘액을 막고 복을 부르는 기운’의 의미를 자연스레 덧입혔습니다.

이름의 뜻 때문이 아니라, 생김새와 사람이 가진 오래된 감각이 그 의미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예전 할머니 집 문지방 위에 가시나무 가지를 올려두던 풍습도 떠오릅니다. 이 역시 과학적 근거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 작은 동작으로 한 해의 액운을 막고 다가올 복을 불러들이고 싶어 했습니다. 어떤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문지방 위에 올려두는 마음. 그 마음은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 역시 복어와 닮아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가시를 세우기도 했고, 지나간 뒤에는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려 애써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은, 조금 더 편안한 모습으로 다음을 맞이해도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