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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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4일 “리빙랩, 도전이 머무는 공간” <백지환 광주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안녕하세요. 백지환입니다. 저는 광주대학교에서 기업가정신센터와 함께, RISE사업단 기업가정신 리빙랩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ELL센터를 맡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어떻게 도전을 포기하지 않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기업가정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늘은 그 질문을 조금 다른 곳으로 옮겨보려 합니다. 바로 지역의 공간, 그리고 리빙랩 이야기입니다.

 

 광주에는 제석산 구름다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이곳은 한때 사고를 막아야 할 장소, 위험을 관리해야 할 공간으로만 이야기되던 곳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장소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나오는 해법은 비슷합니다. 펜스를 높이거나, 차단 시설을 강화하거나, 경고 문구를 더 붙이는 방식 말입니다. 즉, 사고를 막기 위한 수단에 집중하는 접근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이 공간을 단순히 막아야 할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제석산 구름다리 리빙랩 프로젝트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주민, 학생, 전문가가 함께 그 다리를 여러 차례 걸었습니다. 언제 가장 사람이 줄어드는지, 어느 지점에서 발걸음이 빨라지는지, 왜 이 공간이 ‘머물지 않는 공간’이 되었는지를 하나씩 기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제안은 단순한 안전시설 강화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을 문화와 생태, 그리고 사유의 공간으로 전환하자는 정책 제안이었습니다. 빛과 동선,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작은 공간, 자연과 연결되는 시선, 그리고 공연이나 전시처럼 사람의 발걸음을 다시 불러들이는 요소들 말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고를 막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공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다시 이유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저는 오래된 개인적 경험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저는 한국인 유학생 학생회 활동의 일환으로 관동지역 국립대 유학생회 가운데 유일하게 편집부를 만들고 유학생 신문을 창간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고, 잘 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신문의 이름은 ‘사람’이었습니다. 정보를 몰라 장학금을 놓치거나, 유학 초기 적응이 어려워 혼자 버티던 학생들, 그리고 유학 생활을 중도에 포기했던 친구들과도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경험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말해지지 않으면, 기록되지 않으면, 사람의 생각도, 공간의 의미도 아주 쉽게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바라보는 리빙랩은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프로젝트라기보다, 사라질 뻔한 질문을 다시 기록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제석산 구름다리 역시 위험한 장소로만 남는 대신, 도시가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의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무엇을 포기하지 않고 조금 더 이어가고 싶은가”를 물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일상에도 늘 지나치기만 했던 장소, 불편해서 외면해 왔던 공간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 공간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공간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시 생각해 보고 싶으신가요? 그 질문에서 리빙랩은 시작되고, 도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