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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1일 “누군가의 1.5주” <김성민 전남대 의대 소아정형외과 교수>
얼마 전 외래에 한 분이 오셨습니다. 다리에 혹이 만져진다며 걱정스러운 얼굴이었습니다. 진찰을 한 뒤, 저는 MRI를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종양정형외과 의사로서 늘 하는 말이지만, 그 말을 듣는 환자분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MRI요…? 그러면 혹시 나쁜 건가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단계였지만, 그분의 목소리에는 이미 두려움이 실려 있었습니다.
MRI를 찍고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약 1.5주. MRI 영상을 함께 보며 말씀드렸습니다. "나쁜 혹은 아닙니다. 조직검사나 제거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한마디에 환자분이 눈물을 쏟아내셨습니다. 소리 없이 시작된 울음이 금세 펑펑 우는 울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동안 말씀을 잇지 못하셨고, 겨우 입을 여셨을 때 나온 말은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너무 무서웠어요"였습니다.
종양 정형외과 의사로서 좋은 소식을 전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결과이든, 내 앞에서 누군가가 눈물을 쏟아낼 때면 매번 마음 한쪽이 먹먹해집니다.
그분의 1.5주는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밤마다 잠들기 전 다리를 만져보았을 것입니다. 혹시 더 커진 건 아닌지, 혹시 나쁜 것은 아닌지. 인터넷을 검색하다 무서운 글을 보고 잠을 설쳤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에게 말했을 수도 있고, 혼자 삼켰을 수도 있습니다. 평소처럼 출근하고, 밥을 먹고, 웃어 보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돌덩이 같은 불안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진료 예약표 위의 1.5주였지만, 그분에게는 삶이 멈춰버린 1.5주였을 것입니다.
의사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다는 것. 결과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같은 하루라도 전혀 다른 무게가 놓인다는 것. 그래서 그 눈물이 저에게는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건네는 말 한마디, 내가 내리는 판단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세상 전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 말입니다.
이것은 병원 안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의 하루,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취업 준비생의 일주일,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부모님의 밤. 사랑하는 사람의 답장을 기다리는 그 짧은 몇 시간조차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 채 살아갑니다. 나에게는 별것 아닌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밤잠을 설치며 기다린 대답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잠깐 미뤄둔 연락이 상대에게는 하루 종일 전화기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침묵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당신의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잠깐 돌아봐 주십시오. 한 통의 전화, 한 줄의 답장, "괜찮다"는 말 한마디. 그것이 누군가의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진료실을 나서며 고개 숙여 인사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이었지만, 그 표정은 분명 웃고 있었습니다. 그 인사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디 그 기다림이 너무 오래 외롭지 않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