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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8일 “오늘, 당신의 손을 잡아봅니다” <변길현 광주시립 하정웅미술관장>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변길현입니다. 어느덧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 그중에서도 우리 마음을 가장 뭉클하게 만드는 어버이날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 부모님께 전화는 드리셨는지요.
어버이날이 되면 저는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릅니다. 색종이를 오리고 풀로 붙여 만든 종이 카네이션. 서툰 손으로 만든 그 꽃을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리면, 부모님은 그것을 하루 종일 자랑처럼 달고 다니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합니다. 값비싼 꽃도 아니고, 세련된 선물도 아니었는데, 부모님은 왜 그렇게 기뻐하셨을까요. 아마 그 꽃 안에 담긴 마음을 보셨기 때문일 겁니다. 삐뚤빼뚤한 글씨, 엉성한 모양, 마르지 않은 풀자국까지도 부모님 눈에는 사랑이었을 겁니다.
저의 부모님은 저를 늦게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제 또래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금도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제가 번 돈으로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대로 사드리지 못했다는 것. 그때는 몰랐습니다. 시간이 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마음은 나중에 전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중에’가 기다려주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오래된 말이지만, 어버이날만큼은 이 말이 유난히 가슴을 칩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늘 그 자리에 계실 것처럼 생각합니다. 전화를 미루고, 찾아뵙는 일을 미루고, 고맙다는 말도 미룹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옵니다.
오늘 동네 꽃집과 마트에는 붉은 카네이션이 가득할 것입니다. 식당 예약도 많고, 선물도 오갈 것입니다. 요즘은 부모님들이 현금을 가장 좋아하신다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좋습니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선물은 현실적인 사랑이니까요. 하지만 오늘, 현금보다 더 값진 선물을 하나 더 얹어드리면 어떨까요. “엄마, 고마워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짧은 말들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일수록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툽니다. 쑥스럽고, 어색하고, 괜히 낯이 간지럽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 말을 평생 기다리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릴 적 건넨 종이 카네이션 하나에 하루종일 행복해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오늘 아침의 전화 한 통, 함께 먹는 밥 한 끼, 손 한번 잡아드리는 일, 그리고 평소 하지 못했던 말 한마디. 그것이면 충분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직 곁에 계시다면, 오늘은 꼭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카네이션보다 붉고, 봉투보다 두툼한 마음을 말로 전해보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후회로 남을 말을, 오늘 감사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오늘만큼은 우리가 부모님의 가슴에 다시 한 송이 카네이션이 되어드리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