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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3일 “심심해도 괜찮아” <강홍규 GIST 차세대에너지연구소 부소장>
아이를 키우다 보면 유독 마음이 불편한 순간이 있습니다. 아이가 거실 한복판에 대자로 누워 “아빠, 나 심심해”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그 한마디에 부모는 왠지 모를 미안함과 조급함을 느낍니다. ‘내가 아이를 방치하고 있나’ 싶은 마음에 얼른 스마트폰을 쥐여주거나, 번쩍이며 소리 나는 장난감으로 그 공백을 메우곤 합니다. 마치 아이가 잠시라도 심심해하는 것은 부모의 방임이자 죄악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극이 아니라,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고요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바닥의 개미를 따라가고, 종이 한 장으로 엉뚱한 낙서를 끄적이는 시간. 우리가 보기에는 심심해 보이는 그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만들고, 이야기를 지어내며, 자기만의 세상을 상상합니다. 창의력은 과잉된 자극보다 여백 속에서 더 깊이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일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몇 초에도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숏폼 영상을 넘깁니다. 최근에는 AI 플랫폼으로 궁금증을 해결하고 심심함을 달래는 일도 익숙해졌습니다. 물론 디지털 기술과 AI는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 편리함에 기대는 사이, 우리는 점점 사색하고 스스로 질문하는 시간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문제는 그 뒤편의 에너지 소비입니다. 영상 하나, AI 검색 한 번은 손끝에서 가볍게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서는 수많은 데이터가 오가고 데이터센터가 밤낮없이 전력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단 몇 초의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지구의 에너지를 계속 태우며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에너지 분야를 연구하며 깨달은 점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만큼이나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에너지 다이어트’도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이어트는 전력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소비하려는 삶의 방식도 함께 돌아봐야 합니다. 심심할 때마다 화면을 켜기보다 하늘을 바라보고, 걷고, 사람과 대화하는 삶. 그런 여유가 쌓일 때 우리는 더 적은 에너지로도 더 깊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전남은 특별한 가능성을 품은 지역입니다. 바다와 숲, 들판과 강이 삶 가까이에 있고, 미술관과 도서관, 박물관과 과학관은 사유할 여백을 제공합니다. 도시에는 화려함과 활력도 필요하지만, 채움과 속도만으로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심심함을 불안이 아니라 여유로 받아들이고, 빈 시간을 사색과 회복의 시간으로 바꿔낼 수 있는 도시. 광주·전남이 그런 인간다운 도시로 나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진짜 풍요이자 가장 따뜻한 차별화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