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광주MBC 라디오칼럼

11시 00분

칼럼 전문 보기

2026년 1월 2일 “아름다운 사람의 삶”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장 >

 안녕하십니까. 2026년 새해의 이튿날입니다. 저는 광주시립미술관 소속인 하정웅미술관 관장 변길현입니다. 새해 첫 출근하는 날에 애청자 여러분께 인사를 드릴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깃드는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저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으로 25년간 근무하며 많은 큐레이터들, 작가들, 작품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하는 근원적 질문이 저를 미술관에 입사할 수 있는 길이 되어주었었고, 미술관 활동을 통해 인생을 사는 태도와 미적 감상의 태도가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5년간 일하면서 느낀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소명의식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미술관 종사자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타인을 만날 때 먼저 미소 지으며 인사할 수 있는 태도, 자기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태도는 놀랍게도 공적인 소명 의식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인성을 나타내주는 지표라는 것을 아주 많이 느꼈습니다. 

 

 좋은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작품 앞에 겸허히 서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내 선입견을 내려놓고 작품을 세심하게 살필 때 비로소 숨겨진 아름다움이 보이죠.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을 만날 때 먼저 미소 짓고 배려하는 태도는, 마치 명작을 대할 때의 겸손한 태도와 같습니다.

 

 자기 직업에 대한 감사함, 타인에 대한 감사함이 부족한 사람은 독단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누구도 자기 혼자 잘나서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도움을 받아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우리 인생의 아주 중요한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정웅미술관이 위치한 상록공원에서 매일 아침 이를 배웁니다. 아침 일찍 고된 청소 업무를 하시면서도 늘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시는 미화원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직업에 감사하며 타인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십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자신의 삶을 정성껏 가꾸고 타인에게 미소를 먼저 전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제가 미술관에서 찾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 하정웅미술관은 '기증'과 '나눔'의 정신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평생 소중히 간직해온 예술적 자산을 사회를 위해 내놓는 숭고한 마음은, 그 어떤 화려한 작품보다 큰 울림을 줍니다. 이런 나눔의 바탕에는 항상 '내가 받은 것에 대한 감사', ‘우리 공동체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타적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결국 미적 감상이란, 대상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 작품의 존재에 영혼의 울림을 받는 과정입니다. 인생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결코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수많은 이의 도움 덕분임을 깨닫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 인생은 비로소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2026년이라는 새 캔버스가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혹시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면, 오늘부터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이 순간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보시기 권해드립니다. 아침을 깨우는 햇살, 가족의 미소, 이웃의 친절... 이 당연해 보이는 풍경들이 감사의 시선 안에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명작이 됩니다.

 

 25년 전 첫발을 내디뎠던 설레는 마음으로, 저 또한 올 한 해 예술을 통해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여러분의 2026년이 감사함이 넘치는 풍요로운 작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