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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8일 “설렘의 문턱이 자꾸 높아진다면 ” <한은미 전남대 화학공학과 교수>
지구 반대편, 남미로 한 달간의 여정을 다녀왔습니다. 시간을 멈추고 떠나는 일이 누군가에겐 사치일지 모르지만, 저에게 이번 여행은 ‘나중’이라는 막연한 시간에게 넘겨두었던 제 삶을 되찾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 시작은 10년 전, 히말라야였습니다. 에베레스트를 눈 앞에서 마주한 해발 5,643미터의 칼라파타르에 서있던 차가운 새벽이었습니다. 숨은 가쁘고, 다리는 무거웠습니다. ‘난 기계다. 마음의 스위치만 끄지 않으면 발은 내딛게 되어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 심장과 다리가 버틸 수 있는 ‘지금’만이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 볼리비아 라파스, 해발 4,000미터의 정거장에 서서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쉴 때, 역설적으로 ‘살아있다’는 감각이 더 또렷해지더군요. 평소 우리가 숨 쉬는 법을 잊고 살 듯, 우리 마음의 감각도 그렇게 무뎌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매년 3월이면 대학 신입생들에게 늘 묻습니다. “여러분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뭔가요?” 언제나 1위는 배낭여행입니다. 그런데 졸업할 때 다시 묻습니다. 가장 아쉬운 것도 역시 ’떠나지 못한 꿈‘이라고들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시작과 끝에서 같은 꿈을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사이를 지나는 동안에는 온갖 이유로 꿈을 미뤄둡니다. 물론 현실의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급하고, 누군가에겐 가족을 돌보는 일이 전부일 겁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살아있다는 감각’만큼 미루지 말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짜 두려운 건 몸의 노화가 아니라 감정의 둔화입니다. 잔잔한 노을에도 흔들리던 마음이 무덤덤해지고 설렘의 문턱이 자꾸만 높아진다면, 우리의 감각은 이미 퇴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할 숙제가 아니라, 오늘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멀리 떠날 수 없다면, 낯선 골목 하나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인생은 준비가 끝났을 때가 아니라,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흐르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히말라야의 찬 공기와 이번 남미의 뜨거운 햇살이 저에게 같은 말을 건네왔습니다. 가슴이 아주 조금이라도 떨린다면, 그것이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이죠. 관광(觀光)이란 단순한 이동이 아닙니다.
볼 관(觀), 빛 광(光), 빛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듯,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반응‘입니다. 그래서 여행은 장소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바로 지금, 그때가 진짜 여행의 출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