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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9일 “인공지능의 시대, 왜 우리는 다시 '슬픔'을 찾는가” <김춘식 동신대학교 에너지경영학과 교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동신대학교 김춘식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종의 비극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급기야 관객들이 모여 마음껏 우는 ‘통곡 상영회’까지 매진되는 신드롬이 일고 있습니다. 효율과 논리가 지배하는 차가운 인공지능 시대에, 현대인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목놓아 울기 위해 극장으로 모여드는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스크린 속 어린 왕의 비극에 오열하는 모습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에 슬퍼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 이면에는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기술 문명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소외된 현대인들의 깊은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기계가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인간성’의 최후 보루를 확인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은 어제의 불가능을 일상으로 바꾸며 진화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토록 빠른 속도에 적응하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기술이 가속화될수록 내면에는 정서적 지연 현상이 발생하고,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곤 합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이 ‘통곡의 벽’ 앞에 모여 슬픔을 공유했듯, 오늘날 관객들은 극장이라는 현대판 성벽 앞에 모여 상실해가는 인간의 원형을 붙잡으려 합니다. AI는 수억 개의 데이터를 학습해 정답을 말할 순 있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는 실제적 고통은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물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우리가 기계가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인 셈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나 역설적으로 심각한 정서적 굶주림을 겪고 있습니다. 온라인의 '좋아요'는 타인의 온기를 갈구하는 근원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유대를 쌓는 ‘감성의 공동체’가 절실합니다.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은 단순히 일자리를 뺏길 걱정을 넘어, 우리의 판단과 감정조차 AI에 의해 통제당할지 모른다는 본능적 두려움에서 기인합니다.
결국 해답은 기술의 거부가 아니라, 인간성을 중심에 둔 기술의 통제에 있습니다. 기술이 우리 위에 군림하는 주인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가 되도록 하는 ‘인간 중심의 혁명’이 필요합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도 시민들이 기술을 도구 삼아 자기가 사는 마을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리빙랩’ 같은 따뜻한 공동체 모델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술은 고립의 섬이 아니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통곡 상영회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눈물은 기술의 노예가 되지 않고 존엄한 인간으로 남겠다는 소중한 선언입니다. 슬픔은 기계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인류 최후의 영토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 함께 울 수 있는 한, 인류의 이정표는 차가운 알고리즘이 아닌 따뜻한 공감의 선율을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슬픔과 공감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AI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내야 할 진정한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