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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4일 “교사와 부모, 아이를 사이에 둔 동반자” <허승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학교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는, 아이를 위해 만나야 할 교사와 부모가 서로를 불신하거나 경계하는 모습입니다. 부모는 교사를 ‘서비스 제공자’로 인식하고 평가하려 하고, 교사는 부모를 ‘민원인’으로 여겨 상대하기를 꺼려합니다. 교사와 부모의 관계가 감시와 경계의 관계가 되는 순간, 그 피해는 모두 아이에게 돌아갑니다.
교육은 학교만으로도 안 되고, 가정만으로도 안 됩니다. 아이는 교실과 가정을 오가며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와 부모는 아이의 성장을 함께 책임지는 ‘교육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관계가 형성되었을까요? 첫째는 교육의 소비자화입니다. 교육이 시장 논리에 잠식되면서, 부모는 비용 대비 결과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반대로 교사는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행정가의 위치에 처하게 됩니다.
둘째는 불안입니다. 입시 경쟁,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사회경제적 격차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부모는 아이의 작은 문제에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많은 갈등의 밑바탕에는 “우리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라는 불안이 있습니다.
셋째는 소통 방식의 문제입니다. 교사와 부모가 직접 만나 대화하기보다, 문자 메시지, 단체 채팅방, 온라인 민원 등 비대면 방식이 주가 되다 보니, 맥락과 감정이 생략된 채 오해가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는 질문이 쉽게 요구가 되고, 요구는 다시 쉽게 압박으로 변합니다. 게다가 익명성과 즉시성의 문화는 관계를 더욱 거칠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역할의 경계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교사는 교육 전문가입니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 또래 관계, 학습 과정, 생활지도를 전문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부모는 아이를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이해하는 존재입니다. 교사는 학교에서의 아이를 알고, 부모는 삶 속의 아이를 압니다. 따라서 둘은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진 협력자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신뢰는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아이를 위한다는 진정성이 통할 때 형성됩니다. 교사도 인간입니다. 실수할 수 있고 지칠 수 있습니다. 부모 역시 완벽하지 않습니다. 불안하고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는 교사에게는 완벽한 전문성을, 부모에게는 완벽한 책임을 요구합니다. 그 결과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비난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도와 정책이 관계를 보호해야 합니다. 첫째, 교사와 부모의 공식 소통 체계를 정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24시간 메시지를 주고받는 구조는 교사에게도, 부모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응답 가능 시간, 상담 절차, 긴급 상황 기준 등을 명확히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부모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부모 대상 프로그램을 통해 발달 이해, 교권 존중, 디지털 소통 예절, 갈등 조정 방식 등을 체계적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교사의 관계 역량 역시 중요합니다. 예비교사 교육과 현직 연수에서 상담, 갈등 조정, 학부모 소통 역량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넷째, 학교 안에 중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모든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격화되기 전에 대화와 조정을 지원하는 전문 인력과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교사가 무너지면 교육이 흔들리고, 가정이 무너지면 아이의 삶이 흔들립니다. 아이에게 가장 불행한 상황은, 사랑하는 부모와 존경하는 교사가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존중받는 아이는 존중을 배우고, 배려받는 아이는 배려를 배웁니다. 그리고 협력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을 신뢰하게 됩니다. 결국 교육의 본질은 관계입니다.
교사와 부모가 서로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함께 지원하는 동반자가 될 때, 학교는 비로소 아이를 위한 진정한 교육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