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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7일 “무심코 그린 얼굴, 끝내 남은 사랑 ” <김은혜 광주시립합창단 소프라노>
여러분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릴 때 어떤 장면이 함께 떠오르시나요.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릴 적부터 노래 한 곡을 부르거나 들으면 한 사람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바로 가곡 <얼굴> 그리고 그 노래를 참 좋아하시던
저희 어머니였습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그 노래가 들리면 어머니는 늘 조용히 따라 부르셨습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애틋해지는 기억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작곡가 신귀복이 시인 심봉석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곡입니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얼굴을 그리다가 문득 떠오른 한 사람. 그래서 이 노래는 누구에게나 각자의 얼굴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 노래를 부르면 무심코 떠오르는 얼굴이 어머니의 얼굴이라는 것을.
참 이상합니다. 사진을 보지 않아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는 것이.. 웃을 때의 눈빛, 잔소리하시던 표정, 아무 말 없이 바라보시던 그 순간까지. 우리는 늘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얼굴을 잘 보지 못합니다. 너무 익숙해서 너무 당연해서 굳이 오래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그 얼굴이 더 이상 곁에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 얼굴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고 있었는지.
요즘 우리는 참 바쁘게 살아갑니다. 전화 한 통은 미루고 짧은 안부조차 다음으로 미루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미루고 있는 이 시간들이 언젠가는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되지는 않을까.
가곡 ‘얼굴’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지워지지 않는 얼굴,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았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한 번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얼굴을 조용히 불러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조금 더 자주 안부를 전해보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그 얼굴이 그리움으로만 남기 전에..
저는 가곡 <얼굴>을 부르며 다시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동그라미를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그 얼굴이 결국 제가 가장 사랑했던 얼굴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