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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5일 “수직에서 수평으로, 학교 행정의 변화” <김 현 철 죽호학원 이사장>
여러분 혹시 오래전 학교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 보신 적 있으십니까? 교무실 문턱은 높았고, 잘못 들어가기만 해도 꾸중을 듣거나 심하면 체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고장 난 수돗꼭지가 몇 달째 방치돼 녹이 슬고, 누런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 시절 학교 문화는 권위적이었고, 철저히 교직원 중심의 수직 구조였습니다. 학생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불편을 느끼더라도 개선을 요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늘 ‘을’의 자리에 서 있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학교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 문화와 학생인권의 개념이 깊게 뿌리내리면서, 학교 역시 더 이상 권위만으로 운영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물론, 교육행정도 어느새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재정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죽호학원에서 시행하는 QR코드 기반 비대면 민원 시스템입니다. 시설에 문제가 생기거나 민원이 있으면,학생을 비롯한 구성원은 누구든 단순히 QR을 찍고 SNS 메신저에 접속해 사진과 설명을 남기면 됩니다. 고장 난 문고리, 깨진 창문, 학교시설의 작은 불편은 물론 각종 증명서 발급등도 바로 접수되고 교직원들은 실시간으로 이를 확인해 처리합니다. 과거 같으면 몇 달이 걸렸을 일들이 이제는 며칠, 혹은 몇 시간 만에 해결됩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편리함의 차원이 아닙니다. 학생을, 교육을 받는 수동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동체의 주체로 인정한다는 신호입니다. 학생들의 요구를 빠르게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학교의 역할이며 곧 학생 복지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죽호학원은 이 QR 행정서비스를 광주광역시교육청 산하 학교 최초로 학교운영에 도입했습니다. 덕분에 학생들의 의견이 신속히 반영되고, 관리번호 기반으로 시설 위치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어 유지·보수도 훨씬 체계적으로 이뤄집니다. 무엇보다도, 별도의 개발비 4~5백만원이 드는 전용 프로그램 대신, SNS 메신저를 활용하여, 6~ 70만 원 정도의 비용만으로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산의 85%를 절감한 셈입니다. 예산을 절약하면서도 효과는 더 크다는 점에서, 합리적 행정의 모범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혁신적인 시도를 인정받아, 광주광역시교육청 상반기 적극행정 우수사례 공모에서 표창까지 수상했습니다. 또 다른 학교 교장단 연수에서도 벤치마킹 문의가 이어졌고, 실제로 여러 학교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죽호학원내 학교의 성과가 아니라, 지역 교육 전반의 문화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육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행정서비스의 합리화는 단순한 편의 제공을 넘어, 학생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문제를 발견하면 직접 신고하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나도 학교를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문제해결 능력과 책임감을 길러주는 긍정적 습관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쌓여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고, 책임있게 행동하는 사회 주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학교의 작은 변화가 아이들을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적 순기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참아라, 견뎌라’가 교육의 이름이었지만, 이제는 ‘말해라, 해결하겠다’가 교육의 약속이 된 시대입니다. 작은 목소리라도 존중받을 때, 학생들은 더 큰 꿈을 품고 세상과 만날 수 있습니다. QR코드라는 작은 기술이 학생의 목소리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 목소리가 실제 변화를 만드는 시대...! 이것이야말로 학교가 권위를 내려놓고, 학생과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로 거듭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학교의 작은 변화가, 내일 우리 사회 곳곳의 수평적 민주주의 문화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