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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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일 “문화예술의 힘, 그리고 지속가능한 지역의 미래” <임하리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부관장>

 우리나라 지방 곳곳이 인구 소멸, 인구 위기를 말합니다. 인구는 줄고, 학교들은 문을 닫고, 예전에 북적였던 관광지들은 주말을 잠시 제외하면 텅 비어 있는 지역의 미래, 그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그 해답을 지역의 문화예술에 있다 생각합니다. 최근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일명 ‘케데헌’이 그 주인공인데요. 현재는 그 영화에 나온 음악이 미국과 영국 음악 차트를 휩쓸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요소들이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와중에, 영화에 등장하는 호랑이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그 호랑이와 비슷한 모양의 굿즈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굿즈로 나오면서 덩달아 같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단순 굿즈 소비를 넘어, 전통문화를 매개로 한 문화 확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문화와 예술의 힘은 어쩌면 지역을 넘어 나라의 활력을 되찾아줄 중요한 지역 재생 전략의 실마리를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박물관이나 미술관 하나가 과연 지역을 바꾸는 힘이 있을까요? 저는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 가능성은 이미 해외에서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빌바오는 작은 항구마을이며, 부흥했던 시기를 지나 쇠퇴한 항구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가 들어서며, 도시의 풍경이 바뀌고,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문화도시가 되어 2023년에는 13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빌바오의 사례는 빌바오 효과라는 단어가 만들어질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재생 사례가 되었습니다. 

 

 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2012년 파리 중심의 문화 집중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파리 중심부가 아니라 프랑스 북부 탄광 지역인 랑스라는 곳에 ‘루브르 랑스’를 세웠습니다. 랑스는 한때 유럽 최대의 탄광지대로 산업 중심지였으나, 탄광 폐쇄 이후 높은 실업률과 인구감소, 도시 쇠퇴를 겪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문화 기반의 지역회복 전략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결과 연간 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왔고, 작은 도시라 그다지 유명하지 않던 지역도 이제는 제법 많은 세계인들이 아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또 가까운 일본 나오시마섬은 산업 폐기물이 있던 섬에 쿠사마 아요이, 안도 타다오의 세계적인 예술작품을 유치함으로써, 많은 관광객을 유입하는 관광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예술 관광 지역주민들은 문화와 예술로 지역 정체성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예술을 통한 힘은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역에 머무르게 하고, 살아볼 이유를 만들며, 다시 오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주 전남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문화자원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다도해와 무등산, 순천만 등 아름다운 자연절경은 물론, 전통 예술과 지역별 특색 있는 축제, 그리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남도 음식문화까지 국내외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와 매력적인 지역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15년이상 일을 하면서, 문화예술이라는 영역은 지역의 정체성, 고유성, 지속가능성을 포함하는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문화와 예술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기억과 경험으로 남습니다. 광주 전남이 안고 있는 인구소멸과 청년 유출, 고령화의 구조적 위기 앞에서 우리는 문화 예술을 이제 ‘감성’이 아닌 ‘전략’으로 이야기 해야 합니다.

 

 우리 지역이 지닌 문화의 유산이야말로, 새로운 산업이 되고, 교육이 되고, 또 관광과 일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한반도의 끝, 문화의 끝자락인 땅끝 해남에서 묵묵히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문화 없이 남겨진 공간은 소멸하지만, 문화가 뿌리내린 지역은 어떤 변화 속에서도 단단한 뿌리를 내린 것처럼 살아남습니다. 광주·전남이 문화예술 생태계를 기반으로 지역 산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육성할 때, 지역 자립의 기반이 형성될 수 있으며, 이는 타 지역과 차별화된 성장 구조로 이어져, 지속가능한 광주 전남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