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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30일 “봄, 누군가의 출발선 ” <김성민 전남대학교 소아정형외과 교수>
며칠 전부터 병원 창밖으로 봄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달라지고, 햇살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걸음도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봄이 왔다는 것을,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알게 됩니다. 방학이 끝나면 외래 진료실이 한산해집니다. 방학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오셨던 부모님들이 "학교 시작했어요"라며 예약을 미루시기 시작하면, 아, 새 학기가 시작되었구나, 봄이 왔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한산해진 외래에 한 아이가 왔습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스스로 목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옆에는 어머니가 계셨고, 아이의 고개가 흔들릴 때마다 조용히 손을 뻗어 받쳐주고 계셨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에게 봄은 어떤 의미일까?' '새 학기라는 말이 이 아이에게도 설렘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봄의 풍경들이 있습니다.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소풍 가방을 챙기는 손길, 친구와 나란히 걸어가는 등굣길.
하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그 풍경이 창문 너머의 일이기도 합니다. 혼자 앉아 있기도 어렵고, 연필을 쥐기도 힘든 아이에게 새 학기란, 봄이란 무엇일까요. 그렇다고 이 아이들에게 봄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아이 곁에는 매 순간 고개를 받쳐주는 어머니가 있었고, 휠체어를 밀어 병원까지 데려온 가족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 손길 하나하나가 그 아이에게는 봄이고, 새 출발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출발선의 높이와 모양이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힘차게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고, 누군가는 첫 발을 내딛는 것조차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같은 봄, 같은 3월인데 출발선은 이렇게 다릅니다.
저는 소아정형외과 의사로서 그런 출발선의 차이를 매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합니다. 내 출발선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옆을 돌아보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꼭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와 마주쳤을 때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주는 것,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잠깐 멈춰 서는 것, 조금 느린 누군가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그 작은 시선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봄이 됩니다.
여러분, 이 봄, 새로운 출발선에 서시거든 한 번쯤 옆 사람의 출발선도 바라봐 주십시오. 같은 곳을 향해 달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함께 서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그리고 조금 다른 출발선에서 용기를 내고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이 봄이 부디 따뜻하게 닿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