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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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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3일 " 멈춰 선 도시, 다시 걷게 할 당신에게" <이민석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10년 전 즈음에 저는 광주로 내려왔습니다. 조금은 낯선 도시였지만, 건축과 도시에 대한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은 낮설음을 금방 친밀감으로 바꿔야만 했습니다. 광주에 오자마자 5.18 국립묘지와 무등산을 가족들과 함께 했었죠. 무등산 아래, 낮게 흐르는 도시의 풍경은 오랜 역사속 광주를 느끼기에 충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렇게 10년하고 6개월을 살아보니, 이 도시에 정이 들었습니다. 사람 냄새가 나고, 눈빛이 선한 동네들도 많아졌고, 거창하진 않아도 나의 삶을 붙들 수 있는 온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느끼게 된 것도 있습니다. 이 도시는,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줄 때가 많다는 것.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2025년 기준 광주광역시의 인구는 약 139만 명.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50만에 가까웠던 인구가 매년 8천에서 만 명씩 줄고 있습니다. 특히 심각한 건 청년층의 이탈입니다. 2024년 기준, 광주 20대 청년의 수도권 정착률은 60%를 넘어섰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광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성인이 되자마자 타지로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도시의 골목, 버스정류장, 광장에는 점점 젊은 발걸음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빈 상가, 폐교된 초등학교, 그리고 고령화된 주거지입니다. 

 

 오늘은 광주에 사는, 혹은 광주를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 당신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이런 고민을 해봤을 겁니다. “이 도시에서 내 삶을 계속 그려갈 수 있을까?” “왜 내 친구들은 하나둘씩 서울로, 수도권으로 떠나지?” 혹은 “광주는 왜 늘 제자리걸음 같을까?” 이 질문들, 아주 정당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광주는 젊은 세대가 머무르기엔 그리 친절한 도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광주는 지금 사람이 줄어드는 도시입니다. 특히 당신처럼 앞으로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청년들이 가장 먼저 떠납니다. 좋은 일자리도, 창의적인 기회도, 네트워크도 서울이나 부산, 혹은 해외 쪽이 훨씬 많다고 느껴서겠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도시는 점점 늙어가고, 도심은 활기를 잃어갑니다. 새롭게 지은 아파트들은 외곽에 퍼져 있고, 도시 전체는 거대하고 낯선 퍼즐들과 함께합니다. 이 도시에서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 그 자체가 청년들에게는 지치고 버거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일거리만큼 즐길거리도 중요하죠. 문화는 많다지만, 문화 공간은 누군가의 기득권 안에 갇혀 있고, 행정은 느리고, 목소리는 많지만 변화는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기획한 멋진 아이디어도, 이 도시에서 실현되려면 생각보다 많은 벽을 마주하게 되죠. 그리고 이 도시의 정체성인 ‘민주화의 성지’, ‘5·18의 도시’ 분명 자랑스러운 과거지만, 당신이 살아갈 미래를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이 도시는, 여전히 과거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도시를 포기해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광주는 여전히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아직 다 열리지 않은 공간, 아직 쓰이지 않은 가능성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칼럼은 광주를 떠나는 당신을 탓하거나, 머무는 당신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도시의 그늘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도 새로운 빛을 만들 사람들이 당신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광주는 지금 잠시 멈춰있지만, 그 멈춤을 다시 움직이게 할 동력은 청년인 여러분들에게서 온다고 저는 믿습니다. 떠나는 것도, 남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모두 이 도시의 미래의 새로운 역사가 됩니다. 지금 당신이 품은 생각과 시선이, 광주를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광주는 뜨겁지만, 가끔은 멈춰 있습니다. 그 멈춤을 다시 움직임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 같은 젊은 세대의 힘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선택이 어떤 방향이든 그 안에 이 도시와 이어진 작은 끈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