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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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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2일 "지구의 역사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임하리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부관장>

 지구의 역사는 약 45억 년에 달합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생명체가 탄생하고, 멸종하고, 다시 진화하며 지구의 생태계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최근 학계에 따르면, 현생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것은 약 30만 년 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처럼 산업 기술에 의존하는 문명생활을 시작한 것은 불과 200년 전, 인류 역사로 보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인류는 전례 없는 속도로 환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후위기, 생물종 다양성 붕괴, 해양오염, 자원 고갈은 모두 이 급격한 변화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종종 묻습니다. “지구가 괜찮을까?” 하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괜찮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문제는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환경과 조건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15년째 해양자연사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생물 표본을 수집하고 정리하며, 다양한 해양 생태계를 직접 관찰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바닷가에서 패류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해변에 나가면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조개와 고둥들이 이제는 눈에 띄게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속적인 해양 오염,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 온도 상승, 무분별한 채취, 그리고 연안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때문입니다. 특히 플라스틱과 중금속은 해양 생물의 생식력을 저하시켰고, 갯벌과 해저 환경의 변화는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고둥과 조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단단한 껍데기를 만드는, 살아 있는 탄소 저장고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블루카본 생태계의 대표적 존재로,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에서 자연이 수행하는 가장 위대한 역할 중 하나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과 공생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자연을 편의에 맞게 단순화하고, 과도하게 소비하며, 종종 그 복잡한 질서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화석 하나, 고래의 턱뼈 한 조각, 바다 패류 한점에도 수십만 년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인간은 자연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연을 이해하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AI, 스마트시티, 기후 테크 같은 기술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지역의 생태와 공동체의 맥락을 이해하지 않는 기술은 결국 지역과 단절된 채 실패를 반복할 뿐입니다. 

 

 지구의 역사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속도에 맞춰주지 않으며, 그 흐름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떤 기술도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기술은 수단일 뿐입니다. 그 기술이 어디를 향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 통찰입니다. 이제 우리는 묻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지구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지역은 어떤 생존 전략을 세우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오늘날 과학이 해야 할 일이며, 박물관과 과학관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사회적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