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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1일 "경쟁보다 협력이 더 경쟁력 있다" <허승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깨달음을 얻은 옛 선사가 제자들에게 던진 화두 하나가 있습니다. “물소가 머리, 뿔 그리고 네 발이 모두 창살을 통과했는데, 무엇 때문에 꼬리는 통과할 수 없는가?” 화두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거나 기존 지식이나 상식에 얽매여 있으면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자유를 잃고 창살에 갇혀 있던 물소가 어느 날 드디어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됩니다. 이제 물소는 자유를 만끽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물소는 꼬리를 못 빼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을까요? 스승이 제자들의 깨달음을 위해 던진 화두인 만큼, 아마도 ‘창살을 통과했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몸이 빠져나왔으니 당연히 꼬리는 문제가 안될텐데 왜 깨달음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속박되어 있을까요?
해답이 감동적입니다. 물소는 다른 동료 물소들을 위해 자신의 꼬리를 스스로 남겨 둔 것입니다. 차마 혼자만 깨달음의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없어서, 갇혀 있는 동료들도 모두 탈출할 수 있도록 깨달음의 방법을 알려 주고 싶은 것입니다.
오래전 선사가 던진 화두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보면,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까요? 물소가 창살을 탈출하여 자유를 얻은 것은, 흔히 성공했다, 출세했다, 부자가 되었다, 당선되었다, 승진했다 등 누구나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물소처럼 타인을 위해 기쁨을 같이 누리는 방법을 찾을까요, 아니면 혼자만 온전히 그 기쁨을 누릴까요. 현대사회를 사는 인간에게는 매우 힘든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우 슬픈 일이지만, 역으로 동료들에게 꼬리가 붙잡혀 창살을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정된 재화를 획득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나 혼자 더 많이 가지려고 경쟁하거나 같이 나누어 가지기 위해 협력하거나. 그러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대부분 경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경쟁을 선택하게 됩니다.
모든 국가가 그럴까요? 핀란드는 ‘인간은 서로 도우며 성장하는 존재’라는 철학을 교육에 반영합니다. 그리고 경쟁 중심 교육은 불평등을 확대하지만, 협력 중심 교육은 모두를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최고의 학생이 아니라 모두를 잘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어 갑니다. 그 결과,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상위권 성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지역 간 학교 간 학생 간 성취도 격차는 매우 적고, 학생들의 스트레스나 자살률도 매우 낮습니다. 이런 교육철학은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OECD 국가 중 직업 간 임금 격차가 가장 낮은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 결과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사실을 실제로 보여준 국가입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경쟁보다 협력이 더 경쟁력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핀란드 사람들은, 아마도 동료들을 위해 꼬리를 남겨 둔 물소의 화두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