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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9일 “사소한 일상이 도시의 품격을 결정한다” <설정환 재설정도시연구소 대표>
겨울이 되면 도시는 잠시 정돈된 얼굴을 드러냅니다. 가로수와 근린공원, 어린이공원의 나무들이 전정되고, 인도에 무성하던 풀들도 사라집니다. 도로 가장자리와 중앙분리대를 차지하던 잡풀 역시 고사합니다. 도시는 한결 깨끗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모습이 도시의 평소 모습인지, 아니면 계절이 만들어 낸 잠깐의 착시인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다른 도시에서 광주를 찾는 분들이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 경관이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지일 것입니다. 차를 내려 인도와 골목을 걷는 순간, 도시의 관리 수준은 숨기려 해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특히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도시의 진짜 실력을 보여줍니다. 도로는 다시 정리되고 있는지, 쓰레기와 낙엽은 제때 수거되고 있는지 말입니다. 다시 오고 싶은 도시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화려한 관광상품보다 이러한 일상의 장면에서 만들어집니다.
공중화장실과 개방화장실 역시 중요합니다. 위생용품은 충분히 비치되어 있는지, 청결 상태는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누구나 자연스럽게 살펴보게 됩니다. 관광지보다 먼저 기억되는 것이 화장실의 냄새와 관리 상태라면, 그 도시는 이미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화장실과 보도블록, 차도의 청결 문제, 잡초 제거와 쓰레기 관리의 문제는 결코 사소한 민원이 아닙니다. 이는 도시 운영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것을 도시를 만드는 기본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본이 무너지면 아무리 거창한 비전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습니다.
광주는 흔히 관광도시가 아니라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관광도시는 특별한 장소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광주로 진입하는 관문에서 처음 만나는 풍경, 그 첫인상이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결정합니다. 문제는 무질서입니다. 도로변에 난립한 입간판과 통일된 기준 없이 설치된 각종 시설물들은 도시의 얼굴을 흐리게 만들고, 외지인의 눈에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산업단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남공단과 평동산단, 본촌산단을 둘러싼 도로와 인도에 무성한 잡풀은 광주에서 일하는 노동자분들이 매일 마주하는 풍경입니다. 새벽 출근길에 경험하는 도시의 모습은 그 도시가 노동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최근에는 문흥동과 오치동, 우산동 일대의 어린이공원과 근린공원을 직접 살펴보았습니다. 놀이터는 있지만 어린이용 변기를 갖춘 곳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과연 이 공간들이 어린이 중심의 공원으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민주와 인권의 도시라면 행정과 도시철학은 일상 속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문화관광, 청소행정, 도로, 공원녹지 부서가 각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로 연결될 때 도시는 비로소 변화할 수 있습니다.
도시는 ‘사이’를 관리하는 능력입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길과 길 사이, 공원과 아파트 사이. 그 사이를 어떻게 돌보느냐가 곧 도시의 품격을 말해줍니다. 광주는 지금, 관광도시 이전에 ‘품격 있는 생활도시’가 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 출발점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아주 작고 아주 구체적인 일상에 있다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