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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도청 무기고의 의인 5월 행사 보도자료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자 부활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귀사에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고 문용동 전도사님에 대한 귀사의 그간의 관심과 보도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다음과 같이 보도자료를 보내드립니다. 기사예시 이 달 15일(화) 11시에 호남신학교에서 열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38주기 및 故 문용동 전도사 순직기념예배’ 앞두고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다. 문용동 전도사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호남신학교(호남신학대학교의 전신) 4학년 학생이었다. 5월 18일 그는 전도사로 시무하던 광주 상무대 교회에서 사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에게 붙들려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고 말리면서 항쟁에 본격적 참여하였다. 이후 부상자 구호와 헌혈운동 등을 하였으며 5월 21일 계엄군이 물러난 뒤에는 도청의 지하무기고를 관리하였다. 문용동 전도사는 신학도로서 그리고 신앙 고백적 삶으로 광주시민과 계엄군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남 도청 지하 무기고(TNT 등)를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순교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에서는 그의 숭고한 뜻을 기려 2016년 9월 29일 제101회 총회에서 문용동 전도사를 총회 순직자로 지정해 달라는 건은 허락하고 이어 2017년 5월 11일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순직자 지정 기념예식을 진행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에서는 문용동 전도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5월 15일 11시에 호남신학대학교 대강당에서 총회장 최기학 목사(상현교회)의 “하나님의 약속” (예레미아 32:1-15)이란 설교로 순직기념예배를 드린다. 이날 순직기념예배 후에는 문용동 전도사의 추모자료집 「새벽길을 간 이」 개정증보판 출판 기념식과, 추모비 헌화, 5.18 역사박물관과 국립5.18묘지 방문등이 이어진다. 故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비 헌화 / 식사 / 5.18역사박물관 / 국립5․18묘지방문 이날 발간되는 「새벽길을 간 이」 개정증보판은 (사)해피광주(대표회장: 채영남 목사)의 후원으로 한들출판사를 통해 출판된다. 「새벽길을 간 이」는 그동안 문용동 전도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유일한 자료로 활용되어 왔다. 초판은 문용동 전도사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놓은 것이라면 개정증보판에서는 문용동 전도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에 참여하고, 무기고를 관리하며, 27일 끝까지 도청에 남아있게 만든 신앙의 내적동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밝혀, 이 시대에 요구하는 교회와 목회자상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故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사업회’에서는 「새벽길을 간 이」 개정증보판 발간을 앞두고 5월 10일 저녁 7시 30분에 호남신학대학교 본관 세미나실에서 「새벽길을 간 이」 개정증보판 발간기념 학술세미나를 갖는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개정증보판의 글들을 종합하여 문용동 전도사의 내적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정리한 최상도 교수(호남신학대학교 한국교회사)의 “문용동 전도사의 삶과 죽음의 신앙사적 의의 - 일기와 설교를 중심으로-”가 발표되며. 도주명 목사(고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사업회 총무, 온교회, 010-2661-2597)의 논찬과 토의가 이어진다.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를 바란다. ※ 기사예시는 얼마든지 수정하셔서 사용하시도 좋습니다. 뒤에 첨부된 자료들을 참조하시고 혹 부족하시면 연락주십시오. ※ 문용동 전도사님에 대한 기사들이 벌써 4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프락치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사를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용동 전도사님은 이미 5.18민주유공자로 지정받았고, 국립5.18묘역에 안장되셨으며, 가족들은 5.18유족회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함께 무기고에 계셨고 뇌관을 분리하였던 김영복 씨 또한 2011년 5.18민주유공자로 지정받았고 5.18유족회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제는 문용동 전도사님이 의로운 행동을 하게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조명하고, 그 정신을 저희가 이어받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 이 부분에 의문이 있으시면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학술세미나는 이것을 바로 제시하는 세미나가 될 것입니다. 5월 일정 1. 『새벽길을 간 이』개정증보판 발간 기념 학술세미나 - 일 시: 5월 10일(목) 오후 7시 30분 - 장 소: 호남신학대학교 본관 5층 세미나실 (※장소는 당일 바뀔 수 있습니다.) - 주 최: 故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사업회, 호남신학대학교 역사공부모임(가칭) - 행사내용: 1부 식 사: 18:30-19:30 호남신학대학교 티브라운 2부 세미나: 사 회 / 배무궁 목사 발표자 / 최상도 교수 논찬자 / 도주명 목사 - 목 적: 5월 15일(화) 11시에 호남신학대학교 대강당에서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38주기 및 故 문용동 전도사 순직 기념예배’에 발간되는 『새벽길을 간 이』개정증보판의 발행을 앞두고 그 의미를 나누기 위함이다. 2.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38주기 및 故 문용동 전도사 순직 기념예배’ 일 시: 2018년 5월 15일(화) 오전 11:00-14:00 장 소: 호남신학대학교 대강당 주 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회봉사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인권위원회 전남·광주·광주동노회 주 관: 호남신학대학교 총동문회, 고(故)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사업회 후 원: 호남신학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 19기 동기회 전남․광주․광주동노회 인권위원회 광주·전남 NCC 호남신학대학교 제60대 총학생회 호남신학대학원 제22대 원우회 CBS 광주방송, CTS 광주방송 미션21, 기독교호남저널, 기독타임즈, 금호벧엘교회, 예향교회 행사내용: 1부: 예배 예배인도 / 서순석 목사(호남신학대학교 총동문회 회장, 금호벧엘교회) 기 도 / 유갑준 목사(광주노회장, 송정제일교회) 성경봉독 / 서진선 목사(광주동노회장, 예향교회) 특별찬양 / 크로마하프 찬양단(단장, 하정희 권사) (故 문용동전도사의 母교회 광주제일교회) 말씀선포 / 최기학 목사(총회장, 상현교회) 『하나님의 약속』(예레미아 32:1-15 ) 축 도 / 남성현 목사(전남노회장, 봉선교회) 2부: 새벽길을 간이 출판 및 기념식 사회/오상렬 목사(총회 사회봉사부 총무) 내빈소개 신은수 목사(호남신학대학교 총동문회 총무,열린교회) 약력 및 경과보고 / 정창효 목사(호남신학대학교 제19기 동창회장, 새정교회) 헌정보고 / 도주명 목사(故문용동전도사 순교기념사업위원회 총무, 온교회) 헌 정 (총회장님과 유족대표에게) / 윤상현 목사(故 문용동전도사 순교기념사업위원장, 산월교회) 추모공연 / ‘십자가 아니면’ 김소원, 정예찬 전도사(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우) 인 사 말 / 채영남 목사(前 총회장, 사단법인 해피광주 대표) 인 사 말 / 최흥진 총장(호남신학대학교) 인 사 말 / 한상영 목사(총회인권위원장, 창대교회) 장학금 전달 / 신대원2년 김성원에게 서순석 목사(호남신학대학교 총동문회장) 광 고 / 김광훈 목사(故 문용동전도사순교기념사업위원회 부위원장, 주산교회) 파송의 노래 /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사진촬영 3부: 안내/ 장헌권 목사(광주노회 인권위원장, 서정교회) 故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비 헌화 식사 5.18역사박물관 국립5․18묘지방문 『새벽길을 간 이』 개정증보판 발간 경과보고 1. 연 혁 2001. 5. 17. ‘故 문용동 전도사 추모비 건립위원회(상임위원장 정회억 전도사)’에서 「새벽길을 간 이」 발간 편집부: 도주명 전도사, 류종천 전도사, 배무궁 전도사 2018. 5. 15. (사)해피광주(대표회장 채영남 목사)의 후원으로 한들출판사에서 『새벽길을 간 이』 개정증보판 발간 편집자: 도주명 목사, 감수: 강성열 교수 2. 경과 보고 지난 2001년 추모비와 함께 발간된 「새벽길을 간 이」는 문용동 전도사님을 잊지 않기 위해 그간의 기억들을 모아두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 「새벽길을 간 이」는 그 역할을 다 하여 2017년 5월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총회장: 채영남 목사)의 순직자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단지 문용동 전도사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놓은 것일 뿐이지, 문용동 전도사가 왜 의로운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사)해피광주(대표회장: 채영남 목사)에서 문용동 전도사님의 미담을 통해서 문전도사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5.18을 재조명하여 광주와 기독교의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피광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후원을 해 주어 개정증보판을 만들게 되었다. 「새벽길을 간 이」 개정증보판에는 문용동 전도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5.18 항쟁에 참여하고, 뇌관을 분리하며, 27일 끝까지 도청에 남아있었던 의로운 행동의 신앙의 내적동기가 무엇인지를 조명해 보려고 노력했다, 아울러 이러한 신앙의 내적동기가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길잡이가 되길 기대하며 오늘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3. 구성 - 고 문용동 전도사의 설교, 일기 등 글모음 - - 고 문용동 전도사에 대한 신앙적 조명 - 강성열 교수, 문용동 전도사의 삶과 신앙, 그리고 신학 최상도 교수, 문용동 전도사의 삶과 죽음의 신앙사적 의의 - 일기와 설교를 중심으로 - 김형민 교수, 광주 이후의 신학과 신앙 - 문용동 님을 추모하며 - / 초판 정회억 목사, "5·18 광주 민중항쟁과 문용동” / 제1회 학술세미나 김형민 교수, “인권의 신학적 의미” / 제1회 학술세미나 강성열 교수, 김형민 교수의 발표에 대한 논찬 / 제1회 학술세미나 김형석 박사, “5.18 광주민중항쟁의 정신과 북한 선교” / 제2회 학술세미나 - 문용동의 에 기초하여 - 김영복 5.18민주유공자, “5·18 당시 도청 지하 무기고의 진실” / 제3회 학술세미나 배경식 교수, 우리가 잠잠하면 돌들이... / 제3회 학술세미나 - 나의 숙제, 우리의 숙제 - 김안식 목사, 오월의 벗, 문용동! 김병학 장로, 문용동 전도사와 광주제일교회 황양 목사, 인터뷰 - 호세아를 닮은 사람 문용동 - 황승룡 명예총장, 인터뷰 - 아모스를 닮은 사람 문용동 - 윤상현 목사, 나의 숙제 장헌권 목사, 바보 문용동 선배님을 추모하면서 정회억 목사, 30년을 함께 해 온 문용동 선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관, 5․18 민주화운동 개요 故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사업회 연혁 故 문용동 전도사 순직자지정 경과보고(제5호) 故 문용동 전도사 약력 故 문용동 전도사의 유품 고 문용동 전도사의 약력 1952. 09.06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리촌길 30(도장리 86번지)에서 문순봉씨와 김봉님씨의 3년 5녀 중 차남으로 출생 1965. 02. 영암군 군서북초등학교 졸업 1968. 02.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 졸업 1970. 04.12 친구의 전도로 광주제일교회 출석 1972. 01.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졸업 1972. 10. 21 광주제일교회에서 황성욱 목사에게 세례 받음 교회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봉사 1973. 장로회호남신학교 신학과 입학, 제일중등성경구락부 교사로 봉사 1974. 09. 군 입대로 휴학 1977. 08. 군 복무 후 복학 1979. 07. 장로회호남신학교 3학년 재학 중 전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 파송으로 상무대교회 전도사로 부임 1980. 05.18 상무대교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에게 붙들려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고 말리면서 본격적으로 항쟁에 참여. 부상자 구호와 헌혈운동 등으로 활동 1980. 05. 21 계엄군이 물러난 뒤 도청 지하 무기고 관리 1980. 05. 27 5월 26일 오전 11시경 전남 도청 정문 앞에서 고인의 누나와 여동생, 그리고 고인의 동기인 이명섭 전도사, 윤상현 전도사 등이 함께 故 문용동 전도사를 만나 도청에서 나올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故 문용동 전도사는 “신학도로, 신앙의 양심으로 도청 지하실 무기고를 지키지 않을 수 없다. 잘못하면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겠는가. 광주시민과 계엄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무기고를 지키는 것이 신학도인 주의 종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고맙고 미안하다”며 발걸음을 돌려 도청으로 향했다. 이와 같이 故 문용동 전도사는 신학도로서 그리고 신앙 고백적 삶으로 광주시민과 계엄군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남 도청 지하 무기고(TNT 등)를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순교하였다. 2000. 02. 16 명예졸업장 수여 2001. 05. 17 모교 교정에 추모비 건립 / 추모자료집 발간 2017. 05. 11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순직자 지정 기념예식을 진행 故 문용동 전도사의 순교기념 사업을 계속하여 추진하여 오던 중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32주기 및 故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예배”에 참석하셨던 박위근 총회장께서 “문용동 전도사의 죽음을 추모하며 한국교회는 순교자 정신의 개념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교회 순교자의 정의와 개념에 대한 확대 필요성을 언급하셔서 총회에 헌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故 문용동 전도사 순직자지정 경과보고(제5호) 1. 이력 1952. 09. 06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장리 3남 5녀 중 차남 출생(부 문선봉, 모 김봉님) 1965. 광주 이사 조선대 부속중고등학교 졸업 1970. 고 2 때 예수 영접 (광주제일교회 출석) 1979. 전남노회 여전도회 파송 상무대 교회 전도사 시무 1980. 호남신학대학교 4학년 재학 2. 순직 경위 당시 호남신학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문용동 전도사는 전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 파송으로 상무대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던 중, 1980년 5월 18일 상무대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에게 붙들려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고 말리면서 항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부상자 구호와 헌혈운동 등으로 활동하다가 시민들의 힘에 밀린 계엄군이 철수한 뒤인 5월 22일 이후에는 수습활동으로 도청 지하실에 있는 무기고를 관리하게 된다.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므로 분노한 시민들이 무장을 시작했고 시민들의 자제를 촉구하며 반납한 무기의 관리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도청 무기고 관리는 자발적으로 여러 사람이 하였으며 지휘계통을 통해 통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회의를 통해서 무기고를 지킨다는 것이 너무나 위험한 일이며 다이너마이트나 수류탄이 폭발하면 위험하므로 논의가 끝난 2시간 후 남아 있는 사람이 지키자고 의논하였다. 그 결과 남은 사람은 문용동, 김영복, 양홍범, 박선재, 이○○(인천에서 온 대학생) 모두 5명이었다. 이들은 지휘자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연장자인 문용동 전도사가 많은 부분을 주도해 갔으며 다이너마이트, 수류탄, 실탄, 총기류 등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도청내의 다른 사람들과 왕래를 차단하여 무기의 무분별한 방출을 막는 일을 하였다. 문용동과 김영복은 의논 끝에 다이너마이트와 수류탄이 폭발하게 되면 광주 시민에게 엄청난 피해(반경 3km가 초토화-무등산, 서방시장, 광주교대, 전남대학교, 광주역, 일신방직, 농성광장, 백운광장, 월남동)가 예상되므로 뇌관 분리작업을 실시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 중 폭발물 전문가가 없었고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24일 상무대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25일 밤에 상무대에서 문관(군무원) 한 명이 와서 뇌관 분리작업을 하고 분리된 뇌관과 도화선은 놔둔 채 다음날 새벽에 돌아갔다. 당시의 상황은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다. 26일에는 문용동 전도사와 누나와 형수가 도청으로 찾아와 곧 계엄군이 쳐들어 올 것이라며 계엄군이 들어오면 죽게 되니 집에 가자고 설득했다. 26일 밤늦게 정부와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당시 시민군 지도부는 계엄군에 대항하기 위해 무기를 지급한다.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시작되고 무수히 날라드는 총알을 피해 숨어있던 문용동과 김영복은 헬기에서 들리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소리를 듣고 총소리도 멈추었기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되어 문을 나가는 순간 자동으로 쏘아대는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앞서서 나갔던 문용동은 가슴에 3발을 맞아 조준사격에 의한 사망이었고 문용동은 항쟁기간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었다. 3. 순직자 청원 및 지정경과 2015. 06. 01. 광주동노회장 공동영 목사가 제출한 “광동제19-97호 故 문용동 전도사의 순교자 지정(추서) 청원”이 총회에 접수되다. 2015. 07. 21. 제99-5차 회의시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사하도록 하다. 2015. 08. 03. 제99회기 1차 소위원회의시 증인의 증언과 증거자료 확보를 위해 현장방문을 하여 면밀하게 조사할 것을 결의하고 위원회에 보고하기로 하다. 2015. 12. 07. 제100-1차 회의시 전체회의에서 다루기로 하다. 2016. 02. 29. 제100-3차 회의시 간담회를 갖기로 하다. 전남·광주노회와 광주동노회 분들과의 간담회 후 故 문용동 전도사가 불의한 상황에서 죽을 줄 뻔히 알고 행한 삶은 고귀하지만 순교자 추서 규정 제2조 (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그 결과는 다음 전체회의시 결정하기로 하다. 2016. 04. 28. 제100-4차 회의시 故 문용동 전도사의 순교자 지정 청원 건은 순직자 지정 청원 건이 제출되면 병합 심사하여 결정하기로 하다. 2016. 04. 28. 광주동노회장 박창희 장로가 제출한 “광동제20-71호 故 문용동 전도사의 순직자 지정 청원 건”이 총회에 접수되다. 2016. 05. 30. 제100-5차 회의서 만장일치로 제101회 총회에 순직자 지정을 청원하기로 하다. 2016. 09. 29. 제101회 총회에서 문용동 전도사를 총회 순직자로 지정해 달라는 건은 허락하다. 2017. 05. 11.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순직자 지정 기념예식을 진행하다. 『새벽길을 간 이』 개정증보판 발간 경과보고 1. 연 혁 2001. 5. 17. ‘故 문용동 전도사 추모비 건립위원회(상임위원장 정회억 전도사)’에서 「새벽길을 간 이」 발간 편집부: 도주명 전도사, 류종천 전도사, 배무궁 전도사 2018. 5. 15. (사)해피광주(대표회장 채영남 목사)의 후원으로 한들출판사에서 『새벽길을 간 이』 개정증보판 발간 편집자: 도주명 목사, 감수: 강성열 교수 2. 경과 보고 지난 2001년 추모비와 함께 발간된 「새벽길을 간 이」는 문용동 전도사님을 잊지 않기 위해 그간의 기억들을 모아두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 「새벽길을 간 이」는 그 역할을 다 하여 2017년 5월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총회장: 채영남 목사)에서 순직자로 지정 예식을 치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단지 문용동 전도사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놓은 것일 뿐이지, 문용동 전도사가 왜 의로운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사)해피광주(대표회장: 채영남 목사)에서 문용동 전도사님의 미담을 통해서 문전도사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5.18을 재조명하여 광주와 기독교의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피광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후원을 해 주어 개정증보판을 만들게 되었다. 「새벽길을 간 이」 개정증보판에는 문용동 전도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5.18 항쟁에 참여하고, 뇌관을 분리하며, 27일 끝까지 도청에 남아있었던 의로운 행동의 신앙의 내적동기가 무엇인지를 조명해 보려고 노력했다, 아울러 이러한 신앙의 내적동기가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길잡이가 되길 기대하며 오늘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3. 구성 (*내용이 길면 단원만 넣으시면 됩니다.) - 고 문용동 전도사의 설교, 일기 등 글모음 - - 고 문용동 전도사에 대한 신앙적 조명 - 강성열 교수, 문용동 전도사의 삶과 신앙, 그리고 신학 최상도 교수, 문용동 전도사의 삶과 죽음의 신앙사적 의의 - 일기와 설교를 중심으로 - 김형민 교수, 광주 이후의 신학과 신앙 - 문용동 님을 추모하며 - / 초판 정회억 목사, "5·18 광주 민중항쟁과 문용동” / 제1회 학술세미나 김형민 교수, “인권의 신학적 의미” / 제1회 학술세미나 강성열 교수, 김형민 교수의 발표에 대한 논찬 / 제1회 학술세미나 김형석 박사, “5.18 광주민중항쟁의 정신과 북한 선교” / 제2회 학술세미나 - 문용동의 에 기초하여 - 김영복 5.18민주유공자, “5·18 당시 도청 지하 무기고의 진실” / 제3회 학술세미나 배경식 교수, 우리가 잠잠하면 돌들이... / 제3회 학술세미나 - 나의 숙제, 우리의 숙제 - 김안식 목사, 오월의 벗, 문용동! 김병학 장로, 문용동 전도사와 광주제일교회 황양 목사, 인터뷰 - 호세아를 닮은 사람 문용동 - 황승룡 명예총장, 인터뷰 - 아모스를 닮은 사람 문용동 - 윤상현 목사, 나의 숙제 장헌권 목사, 바보 문용동 선배님을 추모하면서 정회억 목사, 30년을 함께 해 온 문용동 선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관, 5․18 민주화운동 개요 故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사업회 연혁 故 문용동 전도사 순직자지정 경과보고(제5호) 故 문용동 전도사 약력 故 문용동 전도사의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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