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도둑맞은 50년-오경수

윤근수 기자 입력 2000-08-11 11:40:00 수정 2000-08-11 11:40:00 조회수 0

◀ANC▶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연좌제 때문에

사망 신고를 내야했던

이산가족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상봉의 기쁨도 기쁨이지만

고통 속에 지내야 했던

50년 세월이 한스럽기만 합니다.



광주 윤근수 기자







◀VCR▶

흑백 사진 속에 까까머리 소년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형 오경수,



형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동생 길수씨는 유년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들을 떠올립니다.



9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던 형은 어렸을 때 부터

마음이 넓고 책임감도 컸습니다.



◀INT▶(너는 공부만 해라

뒷바라지는 내가 다 하마)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추석을 불과 일주일 남겨놓고

인민군으로 끌려 갈 때도

오경수씨는

맏이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INT▶(내가 가지 않으면 가족들이 다치겠지라며..)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후로 들려온 소식이라고는

형이 참전했던 태백산 전투에서

인민군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문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형을 다시 만나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보았지만 그 앞에는 늘 "혹시"나 "만약" 같은

수식어가 붙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50년뒤 그 "혹시나 만약"은 기적처럼 현실로 다가 왔습니다.

(포즈-발표 당시)



순간 50년 세월이 억울해졌습니다.



형이 죽은 줄로만 알고

세상을 떠난 부모님의 얼굴,

맏형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야 했던 기억들,



◀INT▶50년을 도둑맞은 듯



오길수씨는 이제 반세기만에

꿈에도 그리던 형을 만납니다.



형을 위해 옷가지며, 시계며,

약품 몇가지도 선물로 준비했고,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지만 연좌제 때문에

온 가족이 고통받을 때

형의 사망신고를 내야 했던 일은 두고두고 한으로 남아 았습니다.



형을 앗아간 전쟁 때문에

50년 세월을 도둑 맞았다는

오길수씨는 남은 여생을

형과 함께 하는 것으로 보상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엠비씨 뉴스 윤근숩니다.

Copyright © Gwangj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