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광주 학생독립운동은
우리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커다란 사건이었지만
그동안 제대로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광주 문화방송
한신구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1929년 10월 나주역에서의
한,일 학생들의 집단 충돌은
당시 학생들의 잠재된 민족의식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INT▶ 한국인,조선인 멸시..
7초 (박준채 당시 참가자)
광주와 서울을 비롯한
전국 190여개 학교에서는
집단 시위와 동맹 휴학등
범민족적인 항일투쟁을 벌였습니다
◀INT▶ 졸업장도 팽개치고..
(윤석중 씨)
학생들의 이러한 정신은
이후 전개된 독립운동은 물론
반독재*민주 투쟁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STAND UP:
그러나 군사정권 아래서
자연발생적이고 우발적인 것으로
의미가 축소*왜곡돼
지역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70주년을 맞은 올해,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전국 63개 학교 학생대표들이 찾아
항일운동에 앞장선
선배들의 얼을 기렸습니다.
또 현직 대통령이
35년만에 기념식에 참석해
비로소 그 올곧은 정신에 걸맞는
위상을 찾게 됐습니다.
엠비시 뉴스 한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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