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희망곡

정오의 희망곡

12시 00분

사연과 신청곡

911호의 비밀...사죄...

ㅠㅠ 23개월만에 사죄의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3월 2일 토요일이었습니다. 처갓집이 광주라서 그 근처 산부인과에서 아들이 2월 24일에 태어났고 북구 운암동에 있는 모 산부인과에 딸린 산후조리원 9층 911호 방에서 제 아내는 몸조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들은 7층 신생아실의 플라스틱 바구니에서 동기 아이들과 앞으로의 인생을 논하며 지내고 있었구요. 육아휴직 한 달을 내고 저는 성심성의껏 아내와 아이를 돌보았지요.

3월이지만 아직도 바깥 날씨는 차가웠고 건조했습니다. 조리원 건물은 그리 낡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가습기는 사용이 안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 가습기 및 일체의 전열기구도 사용을 못하게 했지요. 그 당시 가습기 세척제로 인해서 크게 문제가 되었었기 때문인지...

평소 감기는 습도와의 전쟁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오매불망 방안 습도조절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며 수건 15장을 물에 적셔 걸어놓기도 하고 간단한 빨래 및 손수건을 빨아서 걸어놓기도 하고 지내던 중... 개인 전열기구 사용금지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조리원담당자분에게 듣고 어렵게 점퍼 속에 전기주전자를 하나 잠입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기주전자에 물을 가득 넣고 뚜껑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전원을 켜면 물이 보글보글 끓면서 수증기가 발생을 합니다. 수일간 수건과 손수건을 빨아 너는 작업이 힘들었는데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자화자찬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빠른시간에 습도를 올리는 데는 좀 미약하더라구요.

그래서 골똘히 궁리하다가 생각한 것이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문을 열어두니 그 습기가 방으로 확 퍼지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조리원은 원룸구조의 방이었거든요. 역시 잔머리가 중요하다는 거... 저녁 9시쯤 아내가 신생아실에 내려가서 수유를 마치고 들어왔습니다. 잠시 후 코고는 소리를 내며 곤히 자길래 습도를 조절해야한다는 신념하에 전기주전자에 물을 받아서 전원을 꼽고, 샤워실에 샤워기를 뜨거운 물로 해놓고 강하게 틀어놓은 뒤 샤워실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흐뭇한 미소로 수증기가 방안에 들어오는 걸 확인한 뒤...방이 너무 더워서 잠시 옥상에 올라가서 찬공기를 쐬고 있었습니다. 뿌듯했지요. 힘들었지만,,, 아내와 아들을 위한 거니까요.

그런데 잠시 후 건물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겁니다.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질서를 지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메~~ 불이나게 신생아실로 뛰어내려갔지요. 빛의 속도보다 다섯배는 더 빨랐을 겁니다. 신생아실 앞에는 혼비백산의 엄마아빠들이 우왕좌왕 시끌벅쩍 혼란스러웠습니다. 다음 날이 휴일이라 아빠들이 조리원에 많이 계셨나봅니다. 뜨끈뜨끈한 조리원 방안에 있던 아빠들이 속옷차림으로 신생아실 간호사분들과 말다툼에 고성...저도 울 애기를 들고 도망가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무척 바빴지요....비상벨은 계속 울리고 방화셔터도 막 내려오고...장난아니었습니다. 잠시 후 방화복과 산소통을 멘 소방관이 등장하고 건물 여기저기를 살펴보더니 오작동이었던 걸로 판명났습니다.

그런데...한 산모님께서... 아까 911호에서 연기가 밖으로 나오는 걸 봤다는 증언...그 때 저와 제 아내는 911호에서 우리방 수증기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었나 깊은 토론을 벌이고 있었더랬죠.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완전무장한 소방관과 조리원 실장님이 들어오셨죠. 당황 또 당황...‘무조건 모르는 일이라 발뺌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나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한 것 뿐이라고...’ 이 곳 저 곳을 살펴본 무장 소방관과 조리원 실장이 갸우뚱하면서 유유히 사라졌고 아내와 저는 한 숨을 비로소 내쉴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그 때 그 산후조리원에 계시던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지금 저희 아들은 건강한 세 살이 되었습니다.

...신청곡은 '다이나믹듀오의 '미안해'요~~혹시 방송된다면 익명으로 부탁드립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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