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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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인터뷰]최영태의 김대중 특강 완결-김대중 대통령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전남대학교 사학과 최영태 명예교수&더불어민주당 조오섭 당선인 전화연결)

매주 목요일 지난 주 이 시간까지, 총 40 차례에 걸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과
대한민국과 호남을 이끌어갈 정치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
전남대학교 사학과 최영태 명예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민주주의ㆍ인권ㆍ복지ㆍ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휴머니스트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뜨겁게 관통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40회를 마치고
총정리 하는 시간으로 준비했습니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보편가치에 대한 비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까지...
전남대학교 사학과 최영태 명예교수와 이야기 나눠봅니다.
 
스튜디오에 직접 나오셨습니다.
 
/인사/
 
1. 김대중 특강 40회를 마친 소회는?
 
10개월의 시간이 매우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주변 분 중에서 김대중 특강 프로를 관심 갖고 듣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고 그럴 때면 무척 반가웠다.
김대중 대통령의 삶이 흥미를 끄는 것은 그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그의 삶의 드라마틱한 점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40여 년 동안 호남과 김대중 대통령은 견고한 정치적 동맹을 맺고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그리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많은 성과를 냈다. 우리는 그런 역사에 많은 자긍심을 느꼈다.
작년에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이했다. 그런데 10년 박에 안 된 지금 김대중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려는 사람이 너무 없어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MBC가 김대중 특강을 기획했고 제가 함께하면서 김대중 정신 선양 운동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어 뿌듯했다.
 
2. 우리는 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관심을 갖는가?
 
첫째는 그의 삶이 전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평화 복지 등을 위해 헌신했고 이 방면에서 큰 성과를 낸 데 대한 관심이다.
둘째는 많은 역경에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치열한 삶을 산 데 대한 인간적 관심과 존경이다.
셋째, 호남인으로서는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그의 삶과 우리의 삶이 겹쳐 연민과 끈끈한 동지애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려 준 데 대한 고마움, 자긍심 등을 갖게 한 점이다.
 
3. 그렇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누구인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난 이병완 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중 청와대 참모들에게 김대중 대통령을 평가하면서 우리 역사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인물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 대통령을 하면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가를 알게 되었고 그런 입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새삼스럽게 훌륭한 인물로 다가와 그렇게 평가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미국의 『뉴스위크』는 김대중의 서거 직후인 2009년 9월 22일 임기 중 조국의 사회·경제·정치를 극적으로 바꾼 전후 지도자 11명을 ‘트랜스포머(transformers)’란 제목 아래 소개하며 김 전 대통령을 그중의 한 사람으로 꼽았다. 뉴스위크가 선정한 11명 속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 등이 포함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서 세계적 인물과 어깨를 나란히 한 거의 유일한 인물입니다.
 
4. 정치적 관점에서의 김대중을 이야기 한다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 그리고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향해 매진한 정치인이다. 그가 추구한 가치인 민주주의는 독재정권 하에서 목숨을 건 투쟁을 필요로 했다. 그가 추구한 평화통일 정책 역시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냉전체제 아래에서 민주화운동만큼 위험한 목표이자 비전이었다.
진보란 현재보다는 미래가치를 중시하고, 또 그것을 위해 변화를 선도하는 사람이다. 민주주의와 평화운동은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려 한 운동이고 그런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 정치인 중 매우 진보적 성향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우리 정치인 중 이런 방식의 정치를 하다가 죽임을 당한 정치인이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구 선생이나 여운형, 조봉암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죽음의 문턱에 여러 번 다가갔지만 이겨냈다. 그가 진보적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다른 정치인과 달리 죽음을 면하고 목표에 가까이 간 주요 이유 중의 하나를 저는 그의 상인적 현실감각과 실용주의적 노선이었다고 본다. 민주 진영의 정치인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본다.
5. 외교적(빌리 브란트와 관계) 관점에서의 김대중은?
 
한반도는 미 중 소(러), 일본이라는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처럼 4대 강국과 이렇게 밀접한 이해관계를 맺는 나라는 없다. 당연히 우리에게는 외교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에서 외교적 역량은 그렇게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했다. 외무장관의 임기는 고작해야 1~2년이다. 정치인 중에도 외교적 역량에서 주목받은 사람은 없었다. 역대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또 스스로 외교적 역량을 쌓은 인물이 김대중 대통령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외교를 중시하게 만든 데에는 서독 총리를 지냈고 동방정책을 통해 동서독 관계는 물론이요 소련, 폴란드 등 인접 공산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여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다진 빌리 브란트 총리가 롤 모델이엇다.
김대중 대통령은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통해 동서독 관계를 개선하고 주변 공산권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여 통일의 초석을 다졌다. 김 대통령은 동방정책을 롤 모델로 하여 햇볕정책을 추구했고 남북평화정책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매우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 그의 개인적 명성과 외교적 능력 덕분에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그에 대해 부정적인 보수적 정치인과 언론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한일관계를 개선한 그를 이야기하며 그의 외교적 혜안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6.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도 빼놓을 수 없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서자로 태어났고, 섬 출신이었으며,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으로 끝났다. 그는 출발부터 우리 사회의 이웃사이더엿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학력은 높은 학력에 해당하였지만 대통령을 꿈꾼 그에게는 고졸 학력도 학력 콤플렉스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독서를 통해 학력 콤플렉스를 단순히 극복한 것이 아니라 석학으로 추켜 받을 만큼 해박한 지식을 축적했고 경륜을 쌓았습니다. 그에게 따라붙은 선생님이라는 칭호는 그가 쌓은 풍부한 지식과 높은 경륜이 밑바탕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꽃 가꾸기를 좋아했고, 새에게 모이 주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예술을 사랑했고 문화 예술인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독재정권과 투쟁하면서 매우 과격한 이미지로 덧칠되었지만 실제로는 감성이 풍부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7. 교수님, 우리는 왜 이 시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화해 협력 시대의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남북관계 회복의 잣대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재개인데 모두 김대중 정부의 성과물들입니다. 그래서 남북관계가 어려울 때면 항상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하게 합니다.
제가 특강을 시작할 때 한일간에 경제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때 여야 사이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적 능력이 회자하였습니다. 올해 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휩쓸었을 때 김대중 정부의 영화진흥정책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올해 우리나라가 코로나 모범 대처국으로 칭찬을 받을 때 아는 사람들은 김대중 정부 대의 4대 보험 확충과 IT산업 육성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가 제시한 비전과 업적들은 여전히 유효하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왜 지금 시점에서 김대중이냐는 물음을 던지게 합니다.
 
8. 호남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서도?
위대한 인물은 그 자신이 특출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대중의 광범한 지지를 받는 사람입니다.
호남과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 지역균형발전 같은 비전과 정책을 갖고 가치동맹을 맺었습니다. 이 가치동맹은 1971년 이후 30여 년 동안 정말 단단하게 유지되었고 이 동맹을 통해 민주화를 앞당기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남북관계를 개선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대중과 지도자가 이렇게 의미 있는 결합을 이룬 적이 거의 없습니다.
호남인들은 김대중 인물이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를 키운 역사에 대해 좀 더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9.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 출신 정치인 중에 어떤 의미가 있는 존재입니까?
 
1961년 5·16쿠데타 이후 10명의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이중 비영남 출신은 최규하와 김대중 대통령뿐입니다. 이 중 최규하는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잠시 과도기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비영남권 출신으로 유일한 대통령입니다.
이러다 보니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많은 사람 그리고 심지어 호남인 중에서도 호남 출신은 대통령 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은 그 패배주의에 도전했고 마침내 깨뜨렸습니다. 게다가 그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로 성장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김 대통령이 호남을 위해 행한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10. 호남인들은 대통령 선거 때면 대권후보의 출현을 갈망하면서도 막상 대권후보가 출현하면 호남 후보 불가론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도 호남인 중 상당수는 호남 후보 불가론, 혹은 호남 후보 필패론을 이야기합니다. 영남 후보 중 호남을 잘 이해하는 인물로 내세우자는 주장을 합니다. 1997 선거 때도 그랬습니다만 김 대통령이 그 우려를 불식시키고 당당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도 호남인 중 상당수는 호남 후보 필패론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대 한 번쯤 더 호남 출신 대통령이 나와야 이런 패배주의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1. 이번에 국회에 진출한 정치인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어떤 점에서 본받아야 할까요?
 
이번에 국회에 진출한 대부분 의원은 초선 혹은 재선들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초선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는 1961년 다섯 번째 도전 끝에 국회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5·16쿠데타로 국회의원 선서도 못 하고 임기를 마쳤습니다. 따라서 그가 1963년 국회에 진출했을 때는 사실상 초선이었습니다. 그런데 1967년 국회의원 선거 때 김대중 의원은 박정희가 그를 떨어드리기 위해 선거 기간 중 목포에 두 번이나 내려올 만큼 거물로 성장했습니다. 4년의 국회의원 생활 만에 전국적 인물로 부상한 것입니다.
김대중 의원이 이렇게 단시간에 전국적 주목을 받는 인물로 성장한 것은 성실한 의정활동 덕분입니다. 그는 평생 골프를 치지 않았고 시간만 나면 국회 도서관에 가서 정책 연구를 했습니다. 특히 국회속기록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앞서 국회의원이 어떤 질문을 했고 여기에 장관이 어떻게 답변했으며 또 그 이후 정부가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점검하고 질문에 임하니까 초선이면서도 재선, 3선 의원처럼 무게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또 그는 질문할 때는 항상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 지역 국회의원 모두가 김대중 의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의정활동을 해달라고 주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김대중 의원의 의정활동 방식에 주목하고 그를 본보기로 의정활동을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그럼 틀림없이 그중에 스타 의원이 탄생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전화연결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되짚어보고 있는데요,
 
정치하는 동안 늘 후세의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 의식하면서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김 전 대통령의 사고와 행동은
후세 정치인들에게 이정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호남의 대표 정치인,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당선인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인사/
 
1.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
 
2.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과 과는?
 
3. 정치인으로 본받아야 할 점
 
4. 21대 국회에서 할 일은?
 
5. 호남 대표 정치인으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한다면
 
네, 말씀 감사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당선인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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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인간적 측면에서 우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본받아야 할 점은?
 
저는 맨 먼저 청소년들에게 김대중 자서전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평론가인 강원국 씨는 김대중 자서전을 처칠 영국 총리에게 노벨문학상을 받게 만든 처칠 회고록에 비유할 만큼 명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김대중 자서전은 글쓰기의 교본이라고도 평했습니다. 또 하나 김대중의 삶은 청소년들에게 꿈과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만큼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또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자기가 생각한 목표에 도달한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업에 실패했거나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자서전을 읽도록 권고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그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와 희망을 안겨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들의 본보기로서 최고의 존재입니다. 그는 민주주의와 평화 등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 그리고 국민에 대해 믿음,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가르쳐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13. 개인적 측면이 아닌 국가적으로 본다면 김대중의 삶이나 업적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강조하고 싶습니까?
 
민주주의가 아직도 불안정한 부분이 있지만 지난 역사적 성과와 우리 국민의 저력에 비추어 볼 때 민주주의의 앞날에 큰 장애물은 없을 것으로 본다. 경제적으로도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복지정책도 점차 확충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언제 어떻게 악화할지 모른다.
햇볕정책은 좁게는 남북한의 긴장 완화와 공존을, 더 넓게는 외교적 지평을 주변 공산국가로 확대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달성하려 한 목표는 ‘절반의 통일’이었다. 민족 동질성을 유지하고 교류 협력하며 평화롭게 살면 사실상 ‘절반의 통일’ 혹은 ‘실제적 통일’은 달성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들은 나머지 절반 즉 정치적 통일도 언젠가는 달성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들은 모두 역사의 힘을 믿었다. 우리의 과제는 남북화해 협력을 통한 민족 동질성의 유지와 공존공영이며 이렇게 하면 사실상 절반의 통일은 달성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 국민이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헌신한 점을 좀 더 많이 기억하고 평가하면서 한반도 평화시대를 여는 데 우리가 좀 더 노력을 기울엿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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