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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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인터뷰]전태일 열사 51주기,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출범(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 최종인 공동이사장)

의미있는 일상을 사는 분들,

우리 주변의 화제의 주인공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주의 인물!’


전태일 열사와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정신을 기리는

전태일·이선 장학재단이 설립됐습니다.


13일, 내일이지요.

전태일 열사의 51주기가 되는 날,

본격적인 장학 사업이 시작된다는데요.


재단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사람이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를 ‘태일이’라고 부르는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의 최종인 공동 이사장 인데요.


재단 설립에 필요한,

5억이라는 큰 종잣돈을 아낌없이 내놓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전태일 열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 출범이 갖는 의미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 최종인 공동 이사장, 연결합니다.


/인사/


1. 전태일 열사에 대한 소개부터?

 (1970년 22살 동료 노동자와 어린 여공들의 부당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뜨겁게 싸웠던 청년, 평화시장 앞에서 몸을 불사른)


2. 당시 노동현장은 어땠습니까?

-평균 노동 시간

-평균 임금

-화장실 조차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다락방에서 미싱


3. 51년 전 평화시장의 청년 전태일이 외쳤던 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4.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전태일. 자신의 죽음을 통해 알렸지요?

(평화시장, 동화시장, 통일상가의 재단사들이 삼동회 만들어..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한 1970.11.13.)


5. 눈앞에 펼쳐진 광경.... 정말 믿기 어려우셨지요.

(전태일 열사의 몸에 붙은 불을 겉옷으로 덮어 끄려고 애쓰고)


6. 이사장께서도 ‘전태일의 뜻’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살아오셨을 듯?

(그동안 태일이 뒤를 따르지 못해서 항상 미안했어요. 다른 재단의 모범이 되는 아름다운 재단이 되면 나중에 태일이한테 갔을 때 덜 미안하겠죠. 그렇게 태

일이랑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50년 동안 전태일 열사와 관련된 각종 기념사업, 모금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왔다.)


7. 청계피복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하셨던데요. 그 이유는?

-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해오셨는 지?


8.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은 전태일 열사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전태일 열사....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 아

니겠습니까?


9.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 이후 노동 현장의 변화는?


10.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 의 설립 취지, 배경은


11.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 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는?


12. 재단 설립에 필요한 종잣돈을 준비해주셨고.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던데요. 그 말씀도 해주시죠.

(청우회 회원과 전태일 열사의 가족 등이 십시일반 보태 약 1억원이 더 모였다. 앞으로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은 10만 후원회원 가입 운동을 벌여 기금을 100억원으로 늘리고, 불안정 노동자와 사회활동가 자녀에 대한 학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13. 장학금은 주로 어떤 분께 드리는 지?


14. ‘태일이의 뜻’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뿌리 내리길 바라는 지?


15.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의 목표라면?

(어려운 사람들이 마음껏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아름다운 장학재단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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