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
38년 후 지금, 계엄군의 고문과 만행을 폭로한다._시선집중광주)20180501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최은영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황동현의 시선집중 3부 시작합니다. 오늘은 80년 5월 항쟁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는 가두방송에 나섰다가 연행돼서 군부로부터 잔혹한 고문을 받은 분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38년 만에 그 아픔을 이번에 털어놓으셨는데 38년 동안 얼마나 가슴속에 절절한 한으로 남으셨는지 그런 부분도 좀 생각이 듭니다. 차명숙 씨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차명숙(이하 차) - 안녕하세요. 차명숙입니다. ◇ 황 - 저희 5.18 특집을 만들면서도, 5.18 이후의 5.18이라는 특집을 만들면서도 우리 차 선생님과 인터뷰를 했던 그때가 생각이 나는데요. 그동안의 절절한 아픔. 최근에 고문의 이야기 어제 털어놓으셨는데요. 건강은 좀 어떠세요? ◆ 차 - 건강은 어차피 평생 챙겨가면서 살아야 되니까 인생의 일부분으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 황 - 38년 만에 당시의 기억을 꺼내시는 그 과정 정말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어제 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심정도 좀 이야기를 해 주시죠. ◆ 차 - 그러니까 항상 모든 당사자들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 부분, 내가 겪었던 40년을 어떻게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어 하는 그런 게 있는데 한쪽으로는 자꾸 가슴속 깊이 이렇게 밀어 넣죠. 저도 또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고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굉장히 두려움을 갖고 있죠. 왜, 이제 내가 털어내지 못하면 내가 나이 먹어서 너무너무 힘들어지겠다는 그 모습이 그림이 그려지는 거예요, 항상 살아가면서. 그래서 2011년도에 재심 청구를 하면서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 알려야 되겠고 그때 당시 이러한 부분들이 있었다라고 말을 해야 되겠다는 그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건 아니고요. 마음의 준비가 또 한 7년, 5년. 그래서 올해는 꼭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2018년을. 작년부터 생각을 했지만 올해는 더더욱이나 그래서 그냥 저 개인적으로 준비해서 하겠다 그래서 한 겁니다. 착잡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38년 만에 이 일을 내 입으로 내 스스로 내 것을 말한다는 그 자체가 참 서글퍼요. 서글프고 힘듭니다, 사실은. ◇ 황 - 결국은 이 문제, 정말 정부 또는 정치권이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고 이것들이 시원하게 진실이 규명돼야 되는데 그렇지 못했던 이 38년 만의 과정이 우리 차 선생님을 더 아프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아픈 기억이기는 하지만 당시 이야기를 잠깐 해 봤으면 좋겠는데요. 차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80년 5월,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되셨는지도 좀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 차 - 80년에 광주에 살았던 광주 시민은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물론 모든 역사를 보면 그렇듯이 그러한 많은 군인들이 왜 들어올까? 군 정권은 뭐지? 독재는 뭐지? 그런 시기 아닙니까, 저희가. 그런 시기에 저희가 그러한 부분들을 이렇게 굉장히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한 그런 시대였었죠. 저 또한 그때 20살 됐던 해고 또 저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많이 뛰어다니면서 했던 그런 시기, 그러한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 같이 계신 분도 어떠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광주를 지켜야 돼. 그리고 광주 우리가 하나가 돼야 돼. 많은 유언비어, 광주를 매장시킨대. 그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왔을 때 그러면 나도 해야겠다. 그래서 한 부분, 할 수 있는 부분을 하자. 물 떠다드리고 심부름 하고 필요하면 옷 갖다 드리고 그렇게 동참하고 또 같이 다른 분들 다닐 때 같이 다니고 또 군인들 이렇게 해서 그렇게 시작을 한 거예요, 처음에는. ◇ 황 - 결국은 당시 광주를 지켜야 되고 광주 사람이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일에 그냥 참여하셨다는 말씀이신데요. ◆ 차 - 그렇죠. 처음에는 다 그렇게 했죠. 저도 또 그렇게 했고요. ◇ 황 - 당시에 우리 차 선생님 나이가 19살. 정말 꽃다운 나이신데 당시 가두방송을 하셨어요. 그 가두방송의 목소리들이 또 방송에서 또 영화에서도 이렇게 표현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때 혹시 하셨던 가두방송 기억나는 부분이 있으면 짧게라도 한 말씀, 한 마디 어떤 방송을 하셨는지 좀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 차 - 제가 21일 새벽인 것 같습니다.
◇ 황 - 21일.
◆ 차 - 새벽에 그렇죠. 제가 지금 그 얘기를 왜 했나 싶은데. 어머니, 아버지 분들은 어떻게 그렇게 방에서 주무실 수 있냐고, 편하게 주무실 수 있냐고. 아들, 딸들이 안동에, 광주에 들어오면서 지금 외부에 막혀서 들어오지 못하고 군인들에게 차단돼서 들어오지 못하고 지금 잡혀 있다고. 나오셔서 광주를 지켜달라고 제가 이제 어떻게 이불 속에서 따뜻한 밥을 드시고 주무시고 편하게 계실 수 있냐고. 나와서 함께해 주시라고 호소를 좀 크게 했겠죠. 그 이야기를 들으셨던 우리 그때 당시 투입되셨던 분들은 그렇게 증언하시고 굉장히 두려웠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는 여성들이 두렵고 누구였을까. 그러면서 그 이야기를 방송 내용을 들으면서 그분들조차도 우리를 빨리 그냥 후퇴 명령을 내려줬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마음이 자기들도 굉장히 그랬다고 얘기를 하시는데 저는 그렇게까지 한 줄은 몰랐어요. 그냥 제 스스로가 지켜야 되고 같이 함께해야 되고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땅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조사 과정에 2만 원 모으고 200명을 죽였다고, 20만 원 모으고 200명을 죽였다라고 세뇌시켰어요. 조사 과정에. 정말 저는 200명이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그날만. 그래서 지금도 그 생각하면 굉장히 마음이 많이 아프고 죄스럽죠. 어린아이들이 거기서 죽었는데. ◇ 황 - 결국은 가두방송 그때 하셨던 부분들. 많은 부분들이 또 공감하셨고 지금도 그 당시 우리 선생님께서 했던 가두방송이, 현장의 목소리들이 또 기록이 돼 있기도 하고 그러는데요. 그 이후에 또 고문 받으시고 그 고문을 이겨내는 과정도 열아홉, 스무 살의 나이. 정말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 차 - 저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더 많았어요, 사실은. 물론 저희는 이후에 알았지만 여성 몇 명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했더라고요. 그런데 저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더 많았고요. 그러나 저희는 일단은 어떤 목적의 한 그룹을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고문은 더 심했죠. 정말.◇ 황 - 결국은 선생님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고문을 가해서 억지 자백을 만들어내서 지금 이것을 어떤 틀 속에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런 고문들이 더 강하게 가해진 것 아닙니까? 누구의 사주를 받고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이런 행동을 했느냐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만큼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고문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것들을 기획하고 그다음에 국민들을 고문한 그런 사람들. 과연 누구인지 이제 진실이 정말 밝혀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차 -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의 기록이 특히나 여성 부분뿐만 아니라 모든 기록이 바로잡히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을 바로 좀 해 달라 호소했던 거고요. 어제 기자회견은, 결론은. 그리고 지금까지 기록이 잘못된 건 잘못된 거고 앞으로라도 모든 연구원이나 또 거기에 사시는 분들, 처벌자들. 그런 부분을 지금이라도 더욱더 세월이 가기 전에 당사자들이 살아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만들어내고 그 부분을 다시 확실하게 기록을 하면서 처벌뿐만 아니라 숨어 있는 저희 그런 기록을 찾아서 바로 그렇게 기록을 해 주셨으면 좋겠고 연구해 주셨으면 좋겠고 또한 그게 바로 우리 5.18이 세계적으로 이렇게 정말 질서 있게 어떠한 질서 있게 이루어진 5월의 정신이지 않습니까? 또 돌아가신 분의 숭고한 어떤 그런 분들에 대한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고 죄책감이죠.
◇ 황 - 해야 될 책임이고요.
◆ 차 - 그렇죠.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도 처벌자나 또한 그 나머지 연구하고 계신 분들이 철저하게 기록을 해 주셨으면 좋겠고 또한 그러한 다시 5.18 특별법이나 여러 가지 정해졌을 때 더 신중하게 더더욱이나 많은 기억에 다른 데 나가 계신 분들의 그런 분들도 하나하나 다 찾아서 기록을 하고 그 아픔. 그때 당시에 고문을 받으면서. ◇ 황 - 아픔들 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그다음에 그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된다라는 그런 전제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주셨다는 말씀으로 이해를 하겠습니다. ◆ 차 - 그렇죠. 저는 그게 더 어제, 오늘 이렇게 말씀드린 중요한 목적이고 원하는 바입니다. ◇ 황 - 오늘 이렇게 인터뷰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차 - 감사하고 수고하십시오. ◇ 황 - 지금까지 차명숙 씨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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