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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소록도의 마지막 신사, 존치해야 한다_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책임연구원_시선집중광주_20180306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최은영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우리 민족의 혼과 정신 말살을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약 1000개 정도의 신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광복 이후에 다 없어지고 지금 유일하게 남은 하나의 신사가 고흥 소록도에 있는 고흥 구 소록도갱생원 신사인데요. 최근 99주년 3.1절을 맞아서 제대로 된 친일 청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 마지막 신사를 철거해야한다. 남겨두어야 한다. 그리고 보면서 우리 일제가 우리를 어떻게 지배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한다. 이런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의견들 좀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신사를 남겨두고 그 신사를 통해서 그 당시를 기억해야한다는 의견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 실 분 연결하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책임연구원 연결 돼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연구원님.
◆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책임연구원(이하 김) - 네 안녕하세요.
◇ 황 - 지금 일제 강점기 시절에 1000개 정도의 신사가 우리나라에 있었네요?
◆ 김 - 네 그렇습니다.
◇ 황 - 그 전에 신사들이 모두 없어졌는데 고흥 소록도에 유일하게 신사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사가 없어진 과정들 짧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김 - 신사가 1000개나 세워졌던 경과를 설명 드리면 신사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처음에는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종교 시설로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총독부가 들어서면서 1915년부터 관리를 하기 시작했고 소록도에 처음 신사가 만들어진 것도 1917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때는 작은 규모의 신사였는데요. 이것이 1936년에 갱생원이 세워지면서 제대로 된 더 규모가 큰 신사 지금 남아있는 모습에 신사를 만들게 됩니다. 1936년이라고 하는 시점은 소록도의 갱생원이 새로 만들어진 시점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침략 전쟁을 점점 강화시켜나가고 중일전쟁 이후가 되면 조선인에게도 신사참배를 의무화 시키거든요. 그런 시점과 맞물려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먼 중앙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런 섬 지역에서 까지 그렇게 신사를 관리하고 체계적으로 만들고 보존했다라고 하는 그런 사실들이 사실은 식민지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그런 시설이었고 그러다보니까 전국에 있는 신사들이 해방 이후에는 아마 해방된 바로 다음 날부터 제일 첫 번째 불태워지는 장소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 황 - 결국은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종교, 그리고 정신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신사를 건설했던 거 아니겠습니까?
◆ 김 - 네.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총동원 정책을 시현하면서 어떻게 천왕에게 충성하는 식민을 길러 낼 것인가. 그리고 강요할 것인가. 강제할 것인가. 이런 것들로 활용된 장소가 신사라고 합니다.
◇ 황 - 그러나 아픔과 상처가 가장 극명하게 보여 지는 곳이 이 신사 일 수 있겠는데요. 그런데 신사가 1000개 만들어진 신사가 없어졌는데 하나 남았다고 하는 게 고흥 소록도 신사인데 이 신사 과연 철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보존하면서 그 때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김 - 우리가 신사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은 소록도 신사가 유일하고요. 나머지 같은 경우도 파편적으로 조각들이 남아있거나 계단들이 남아있거나. 그런 곳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남산에도 계단의 흔적들이 남아있고 지금의 주요한 큰 도시들의 대부분 산 중턱에 있는 광장 같은 경우도 거의 대부분 신사 터였는데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거기가 예전에 무슨 장소였는지 어떤 장소였는지. 어떤 역사적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지 모르는데 사실 소록도의 그런 신사가 있으므로 해서 소록도 전체가 어떤 지역이었는지를 또 그 소록도 전체 신사를 통해서도 이 식민지 통치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아주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신사가 남아있으므로 해서 우리에게 역사적인 어떤 교훈들을 다시 되새길 수 있는 그런 장소라고 저는 오히려 생각을 합니다.
◇ 황 - 일부에서는 문화재청의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그러는데 그런 식으로 국가 예산까지 들여가면서 이런 일자리 신사를 관리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그런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 김 - 등록문화재제도라는 것이 생긴 것이 2002년이거든요. 2002년에 등록문화재를 지정하면서 사실은 거의 대부분 등록 문화재 목록을 쭉 보시면 거의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근대 건축물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 이전에 역사적 자산들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고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깊지 못해서 거의 다 개발에 의해서 없애지거나 아니면 의식적으로 없애거나. 그런 과정을 거쳤는데 오히려 지금 우리가 그 시대에 만들어졌고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리가 향유했던 건물들에 담긴 역사를 오히려 보존하고 활용하자라고 하는 차원에서 등록 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졌고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이것이 가진 역사가 뭐냐. 더 생각해 보기를 등록문화재 제도가 생긴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등록문화재 제도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가 깊어져야 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 황 - 결국은 아픔이 담겨있는 그런 문화재 그런 흔적들이라도 남기면서 우리들 스스로가 역사를 잊지 않는 수단. 교육공간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시는 거네요.
◆ 김 - 네 그렇습니다.
◇ 황 - 지금 친일 잔재를 청산해야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굉장히 중요한 화두가 되어있는데요. 이런 건물이나 유산들 남아있는 흔적에 대한 청산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들, 친일에 행동을 했던 인물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산. 이게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보십니까? 그런 부분들.
◆ 김 - 저희가 가장 상징적인 부분은 1995년에 가장 어떻게 보면 가장 서울에 중심에 있는 조선 총독부 건물을 아주 상징적으로 그냥 폭발시킨 것을 국민들이 다 보지 않았습니까? 그 때도 존치냐. 아니면 철거냐. 이런 것들에 대한 논란이 많았는데 지금 물론 광화문 한가운데 조선 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이전을 해서 그 모습을 남겨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가 소록도 같은 경우도 사실은 이거는 좀 아이러니기도 한데요. 어떻게 보면 개발. 우리가 70,80년대에 거쳐 왔던 급속한 급살에 미치지 않은 곳이 사실상은 이러한 건축물들이 남아있는 그런 아이러니를 보게 되는데 소록도 같은 경우도 신사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시설들에서 벌어졌던 어떤 인권 유린과 학살과 단종과 낙태. 이런 것들의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작 되었던 어두운 역사가 사실은 대한민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지속되었잖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어둠에서 계속 이어왔던 역사를 사실상 한국인에게 가해졌던 그런 인권 유린의 역사가 어떤 국가의 대상으로서 제자리를 잡게 되고 그리고 그 지역의 그러한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국립 박물관이 생겼거든요. 우리가 역사를 다시 되새기고 제대로 잡는 과정이 바로 소록도에서 지금 어떻게 역사를 기억할 것인가에 과정으로 잘 보여 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황 - 네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김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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