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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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는 헬기 착륙공간 확보 작전으로 추정!"_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김희송 교수_시선집중광주_20170523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15~07:53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정유라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5.18민주화 운동에서 최악의 사건이 바로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일겁니다. 신군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자위권 차원에서 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계속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 집단 발포가 병력을 수송하는 헬기의 착륙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밝혀졌습니다. 신군부의 주장에 정면 반박하는 그런 내용인데요. 조사를 맡은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김희송 교수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김희송 교수(이하 김) - 네 안녕하세요.

◇ 황 - 80년 5월 20일 광주역 앞 사격, 그리고 21일 집단 발포 이유와 과정이 이번 조사 결과 밝혀졌다고 하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정리 좀 해주십시오.

◆ 김 - 기존의 신군부 주장은 본인들의 우발적 사격이다, 또는 자위권적 차원의 사격이란 주장을 해왔는데요. 이번 제 연구에서는 20사단의 이동과 투입과 관련된 작전과정에서 사격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5월 20일 날 저녁에 항공수가 부대단위의 집단발포를 감행합니다. 그 때 당시 항공수의 사격으로 4명의 시민이 총상으로 사망하셨고 6명의 환자가 발생했는데요. 무차별 사격을 하고 있던 그 시각에 공교롭게도 20사단의 4700여명의 병력은 시 진압을 위해서 광주역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20사단의 작전 내용은 3공수와의 작전과는 오버랩 되지 않았던 내용들이었거든요. 3공수가 왜 5월 20일 저녁에 사격을 했는가라는 그 이유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이번에 확인했던 내용은 20사단의 최초 도착지가 광주역이였고 광주역을 집결지를 확보하기 위한 작전 수행과정에 3공수가 사격을 했던 거고요. 공교롭게 20사단이 결국은 광주역으로 도착을 못합니다. 송정역으로 도착을 하고 20사단 병력이 5월 21일 날 아침에 도로를 이용해서 시내 진입을 다시 시도하는데 시위대들이 육로 진입을 막아버리거든요. 도로를 이용한 진압이 불가능해지자 군은 헬기를 위한 공중 투입 작전을 다시 시도 했고 그 과정에 동원됐던 헬기들이 저희 시민들이 목격했던 그 시간에 헬기 사격을 자행했던 거 같습니다.

◇ 황 - 정리를 해보면 결국은 20사단이 진압을 위해서 광주에 진입하기 위한 사전 과정으로서 총격들이 의도적으로 일어났단 이야기시네요?

◆ 김 - 네 그렇죠.

◇ 황 - 그렇다면 지금까지 신군부 그리고 또 전두환씨가 자서전에 밝힌 대로 자위권 차원은 아니었다는 게 이번에 조사로 명백히 밝혀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 김 - 자위권이라는 개념들 자체도 좀 넌센스긴 한데요. 군인들이 위험에 처해서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자국의 국민을 상대로 사격을 했다는 건데 그러면 이제 그 때 당시의 상황들이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는지 그 긴박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잘 되지 않거든요. 왜냐면 5월 20일 광주역에서도 그랬고 5월 21일 도청에서도 마찬가지로 사격하고 나서 군부대를 철수해버리거든요. 철수를 진즉 했으면 될 상황인데 철수하지 않고 끝까지 그 현장을 사수하면서 사격까지 진행했던 그런 모종의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던 거죠. 이제까지 그런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군이 공개하지 않았던 거죠.

◇ 황 -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지금 교수님께서 조사와 연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좀 밝히신거 라는 건데요. 많은 분들이 그 이유, 왜 이렇게 발포를 했는가에 대해서 이해가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조사 내용에는 군이 계속 부정하고 있지만 여러 목격자와 증거가 있는.. 이 헬기 사격에 대한 조사 결과도 있다는데 그 이야기도 좀 해주세요.

◆ 김 - 앞서 말했듯이 헬기를 이용하여 20사단을 도청에 투입하기 위한 일이 진행되었죠. 그래서 이제 그 당시의 군의 주장은 무장 헬기가 그 당시에 파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헬기사격은 있을 수 없다, 라고 주장했어요. 군 자료를 항공 작전 일지에는 없지만 다른 보안사의 자료라던가 교차 검증을 해보니까 우리 광주 시민들이 사격을 목격했던 그 시간에 적어도 세 대의 무장헬기가 광주에 파견 됐던 사실이 이번에 확인 됐어요. 또 헬기사격에 대한 주장을 할 때 파견됐던 헬기 조종사들은 어떤 주장을 했냐면 시간이 흘러서 출동일시나 횟수는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타당했던 주장 같았죠. 군 자료를 보니까 개인 기록 비행기록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헬기 조종사들은 자기들이 출동했던 시간, 목적들이 개인 비행기록표로 작성을 하고 이건 공식자료기 때문에 군이 자료를 가지고 있고 헬기 조종사들도 개인적으로 이걸 갖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 군이 당시에 출동했던 횟수, 시간은 공식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러나 이제까지 군은 그런 자료 자체가 있다는 것도 부정해왔고 헬기 사격 존재자체를 부정했죠.

◇ 황 -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이번에 헬기 개인 조종사들의 기록표까지 다 이렇게 조사를 하신건가요?

◆ 김 - 개인 비행기록표가 있다는 걸 확인했죠. 그런 사실 자체를 부정했고 대신에 이제 어떤 자료를 발굴했냐면 5.18민주화 운동이 종료되고 나서 군이 최종적으로 개인 출동횟수하고 시간을 통계했던 자료를 찾았거든요. 그러면 이제 헬기 조종사들의 개인 비행기록표하고 군이 통계로 발표했던 이 자료를 서로 교차검증하면 우리가 주장하는 5월 21일 출동한 헬기, 조종사 특정이 가능한 거죠.

◇ 황 - 이렇게 정리를 해보면 결국은 이런 발포들이 자위권이나 자기들의 목숨을 방어하기 위한 군의 지금까지 이야기가 아니고 어떤 도청을 진압하고 어떤 작전에 의해서 그것을 사전 작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였다. 이렇게 이해가 될 수 있는 거네요?

◆ 김 -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군의 작전 과정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봐야하는 겁니다.

◇ 황 -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37년이 지났지만 다시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자고 있는 시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조사 결과가 아닐까 싶은데요. 앞으로 저희들이 진상 규명 과정에서 좀 더 밝혀야 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교수님?

◆ 김 - 아직 이제 진실 규명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군 자료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 져야 합니다. 어찌 됐든 3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시민들의 목격으로 진실을 규명하는데 한계가 존재하고 그래서 가해자 측인 군이 남긴 자료, 이걸 검증하고 이 군 자료에 대한 검증을 군관계자의 진술을 통해서 재확인하는 과정. 그러면 당시의 군이 전개했던 작전에 대한 전모가 다 들어날 거 같아요. 작전의 전모를 밝혀야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진상규명이 시작 될 수 있다, 라고 봅니다.

◇ 황 - 지금까지 이런 자료에 접근하는 게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 이 정부의 의지가 강하고 국방부에서도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부분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그러면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 질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십니까?

◆ 김 - 이번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높다 라고 봅니다. 하지만 37년 동안 국방부나 군이 보여줬던 행태를 보면 끊임없이 자료는 은폐하고 관계자의 진술은 협조하지 않아 왔거든요. 군관계자들이.. 그래서 이번 진상규명과정들 속에서는 군 작전에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자료 제출을 강제하는 게 필요할거 같아요. 효과적으로... 만약에 군 또는 관련자들이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하지 않았을 때는 강력한 제제방안을 마련해서 자료제출의 실효성을 당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 황 - 그래서 지금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이야기가 진상 규명을 하기 위해서는 특별법을 만들어하지 않느냐란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 부분도 굉장히 필요하겠네요?

◆ 김 – 그렇죠. 특별법이 만들어 지면 조사의 실효성을 담보해야하거든요. 지금 조사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자료제출, 관련자들의 진술성, 이 두 가지가 핵심이라고 보고요. 관련자들이 자료제출을 의무화하고 이걸 어겼을 때는 강력한 제제 방안이 있었을 때 실효성이 담보 되고요. 두 번째는 조사 대상자들이 자발적 협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37년 동안 그들이 진실을 발언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조사 대상자들을 강제적으로라도 소환할 수 있는 강력한 동행명령에 대한 규정이 확보되는 게 진실규명에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황 - 네 오늘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 - 네 감사합니다.

◇ 황 - 지금까지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김희송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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